신명나는 덩더쿵 장단에 집안일 스트레스 훌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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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최근 풍물을 배우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놀이패들이 여는 풍물 강습에 주부 수강생이 점점 많아지는가 하면, 주로 주부나 노인을 대상으로 한 동사무소 등 지역 단위의 문화 강좌 중에도 풍물 강좌들이 속속 마련되는 추세다. 서울의 '봉천놀이마당(www.norimadang.or.kr)'에서 한달째 풍물을 배우고 있는 중앙일보 주부통신원 조전순(38·서울 상도동)씨가 주부들이 땀 흘려 풍물을 배우는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편집자

지난 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봉천동 한 상가 지하에 위치한 '봉천놀이마당'의 연습장. 풍물을 배우기 위해 8명의 주부가 한 자리에 모였다.

덩 덩 더덩 더덩 덩 딱~!

인사굿을 하고, 바로 장단에 들어간다. 꽹과리 장단에 맞춰 열심히 징과 북·장구를 두들긴다.

나를 비롯해 이곳에서 풍물을 배우는 주부들은 쌓였던 삶의 찌꺼기를 풍물 가락에 날려 버리는 모습이다. 차를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뒤풀이 시간엔 엉킨 삶을 풀고 삶의 자락을 다시 정리한다,

내가 풍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한달 전. 직장 일이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풍물 강습에 관한 정보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시작한 지 아직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밝고 긍정적으로 만들어주는 풍물의 매력에 빠져들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풍물을 배우는 다른 주부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듯하다. 풍물을 시작한 지 5년이 돼 '주부패'의 회장을 맡고 있는 한애심(55·서울 봉천동)씨는 "속 상한 일이 있으면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대신 장구나 북을 두드린다"며 웃었다.

이달에 새로 풍물을 시작한 하근순(42·서울 상도동)씨는 나와 마찬가지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맞벌이 주부다. 그는 "퇴근하고 멍청히 TV 드라마나 쇼프로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대신 몸 전체로 생동감을 느끼는 풍물을 배우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부님'이라 부르는 선생님 서승우(34)씨는 "풍물의 매력은 '어울림'"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마추어 풍물 단원이었던 그는 진안 좌도 중평굿을 배운 뒤, 우리같은 초보들에게 풍물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가락에 맞춰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마당을 제공한다는 것이 최근 풍물이 주부들 사이에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사실 전업 주부의 경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적고, 집안에 갇혀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꿈은 식구 모두가 풍물을 배워 '가족 풍물패'를 만드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딸이 대학에 입학할 때쯤 우리 가족이 북·장구·꽹과리 등을 들고 유럽 여행을 떠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오늘도 힘차게 장구채를 놀린다.

중앙일보 주부통신원 조전순

◇풍물이나 풍물 강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는 '인터넷 사물놀이(www.samulnori.net)''사물놀이 동호회(http://user.chollian.net/~zssamul)'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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