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에어버스, '일타쌍피'공중급유기 수주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00억달러(약 6조원) 규모의 미 공군 '다목적공중급유기(MRTT·Multi Role Tanker Transport ) '사업을 두고 미국 보잉사와 유럽의 에어버스가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다. 블룸브그 통신에 따르면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EADS·에어버스의 모회사)은 노드롭 그루먼과 함께 지난 8일 입찰 마감시간을 하루 앞두고 다목적공중급유기 사업제안서를 미 공군에 제출했다.

미 공군은 1950년대에 생산된 179대의 공중급유기 KC-135를 교체하는 'KC-X'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군은 새로 도입되는 공중급유기는 '동시에 두대 이상의 항공기에 급유할 수 있고 군병력과 물자 수송도 가능한 다목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 걸고 있다. 이 사업에는 보잉과 EADS가 경쟁해 왔다.

보잉은 1990년 후반부터 약 10억달러의 비용을 들여 MRTT를 개발해 왔다. 마침내 2002년 보잉사는 보잉767 여객기를 개조한 MRTT로 미 공군으로부터 'KC-767'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사업이 성사되는듯 했다. 그러나 2003년 보잉사와 국방부 사이에 미 공군 사상 최악의 '뇌물스캔들'이 터졌다.

2001년 보잉의 CFO 마이클 시어스가 급유기 사업의 국방부 대표였던 공군 군무원 덜리 드러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내주는 댓가로 공군 퇴직후 보잉사에 입사시키고 사위와 딸을 채용할 것 등을 약속한 것이다.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2003년 두 사람은 해고된 뒤 재판에 회부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보잉은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했고 미 공군은 KC-X 사업을 중지시켰다. 보잉사는 스캔들 때문에 다잡은 거대시장을 날려버렸다.

이 와중에 에어버스의 모회사인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은 미국의 노드롭그루먼과 손잡고 에어버스 A330을 개조한 MRTT를 개발했다. 에어버스 측은 "A330 MRTT가 수송능력과 연료탑재량에서 보잉보다 앞선다" 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보잉측은 "오랜 경험과 기술로 제작된 KC-767이 안전성과 경제성 등에서 우수하다" 고 말하고 있다. 현재 영국과 호주 공군은 에어버스의 A330 MRTT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고 일본과 이탈리아는 보잉의 KC-767을 선택했다.

2008년 뇌물스캔들이 일단락되자 KC-X사업자 선정작업이 다시 진했됐다. 결국 미 공군은 에어버스가 개발한 A330 MRTT을 선택하고 이 기종에 KC-45A라는 공식 제안 명칭을 부여했다. 보잉은 'KC-767'을 개선한 기종으로 맞섰지만 미 공군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보잉의 '훼방(?)' 도 만만치 않았다. 보잉은 유럽각국이 EADS에 부당 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 공군에 정식으로 항의했다. 결국 2008년 6월18일 미연방회계감사원(GAO)은 보잉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 공군은 EADS와의 계약을 취소하고 사업자 선정 조건을 다시 제시했다.

EADS는 이에 반발했다. 노드롭그루먼의 웨스부시 회장은 지난 3월 "KC-X사업의 사업자 선정 조건이 불공정하다며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브라운 영국총리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까지 나서 군수산업에서 "미국의 보호주의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공군의 공중급유기 사업이 미국과 유럽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공중급유기 시장은 그동안 보잉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이번 KC-X 사업에서는 새로운 경쟁자인 에어버스가 등장했다. 에어버스는 성능이 뛰어난 다목적 공중급유기를 선보이며 보잉을 압박하고 있다. 미 공군도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다. 군수시장에서도 더 이상 '자국회사 프리미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실제로 이번 입찰에는 에어버스 외에 '적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미국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의 고민도 깊다. 500억달러에 달하는 KC-X 사업을 유럽에 통째로 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의회의 압력도 거세다. 그러나 EADS측은 A330 MRTT는 미국 회사인 노드롭 그루먼과 공동생산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공정이 미국에서 이루어 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9일 마감된 이번 다목적 공중급유기 사업자 최종 선정은 오는 11월로 예정돼 있다. '엎치락 뒤치락' 10년을 끌어 오던 미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기 사업의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멀티미디어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