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살던 소녀가 재상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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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온 식구가 교회 앞마당 천막에서 숙식을 하고, 다 떨어진 치마를 기워입고 다니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수학 천재' 장상을 뚜렷이 기억합니다."

6·25 당시 그와 함께 대전 대흥국민학교를 다녔던 이의경(李義卿·서울 서초구 서초3동)씨는 장상(63·張裳)국무총리서리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화여대 1백10년 전통이던 '미혼 총장' 관행을 깼고, 이번에는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남긴 張총리서리의 어린시절은 이랬다.

1939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6·25 당시 어머니·언니와 함께 대전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張총리서리는 이화여대 전체 차석으로 수학과에 입학한다. 서울대 수학과 진학도 가능했지만, 전액 장학금과 유학 지원을 약속받고 택한 이화여대 진학은 결국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졸업 후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를 밟던 중 연세대 신학과와 프린스턴대에서 함께 수학한 한살 연하의 박준서(연세대 신학과 교수)씨와 연애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두었다.

구약을 전공한 남편과, 신약을 전공한 張총리서리 부부는 서로를 '박선생' '장선생'으로 부르며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총리 제의가 있었던 지난 10일 밤에도 남편과 상의했다고 張총리서리는 털어놓았다.

그는 90년 이대 학생처장을 시작으로 인문대학장·정보과학대학원장·부총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폭넓은 대인관계와 추진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총장 재직 중에는 기업들의 지원을 이끌어 삼성·현대·LG·포스코·신세계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교내에 무상으로 건물을 기증하기도 했다. 보직교수 시절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여자니까 일찍 좀 들어가보겠습니다"라는 직원을 호되게 나무란 일은 이대 직원들 사이에 유명한 일화로 통한다.

張총리서리는 2000년 金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이희호 여사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결식아동돕기 모임인 '사랑의 친구들' 이사직을 98년부터 맡고 있다.

윤창희·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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