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억원대 사이버 도박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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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코스타리카에서 서버를 운영하면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8백60억원대의 사이버 도박을 벌여온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명문대 출신 전직 벤처기업 사장·포커 관련 서적 저술인 등 12명으로 구성된 이들 일당은 바람잡이·전문 도박사들을 동원, 회원을 모집하면서 수사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독일·미국 등 외국 신용카드 결제 대행사를 이용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도박 사이트를 이용해온 상습 도박자들 중엔 공무원·군인·대기업 연구소장·의사 등이 다수 포함됐으며,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를 훔치는 등의 파생 범죄도 벌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국경 넘나든 범행=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는 11일 외국에 도박 인터넷 서버를 갖춰 놓고 한국인들을 상대로 8백60억원대의 사이버 포커 도박을 벌이게 하고 거액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도박장 개장)로 桂모(37·캐나다 거주)씨와 포커 서적 저술인 李모(43)씨 등 8명을 구속했다.

桂씨 등은 지난해 8월 코스타리카에서 서버를 빌려 포커 사이트를 개설한 뒤 e-메일 등을 통해 회원 5천3백여명을 모집, 인터넷 상에서 사이버 칩으로 도박을 하게 하고 판돈의 2~2.5%의 수수료를 받아 20억원을 챙겨온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도박 프로그램과 승부를 겨루는 기존 사이버 도박과 달리 회원들끼리 직접 포커를 하면서 은행계좌를 통해 돈을 주고받는 '하우스형' 도박판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수사기관의 IP 추적을 피하기 위해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사이트 이름을 계속 바꿔가며 운영해왔으며, 도박 자금의 결제도 외국 금융기관들을 경유하도록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회원 피해 심각=이 사이트를 통해 거액의 도박을 벌여온 공무원·군인·의사 등 27명도 상습도박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吳모(36)씨는 근무 시간에 사무실 컴퓨터를 이용하는 등 상습적으로 도박을 하다 적발됐으며, 현역 장교인 金모(35)씨는 매주 3~4회씩 수천만원어치 도박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단계 판매원 金모(23)씨는 이 사이트에서 4천만원을 잃자 동료 직원의 신용카드를 훔쳐 사용했다가 경찰에 붙들렸다. 건설회사 임원 朴모(42)씨는 회사 법인카드까지 이용해 도박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회원들 상당수가 거액을 잃어 전셋집에서 쫓겨나고 큰 빚을 지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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