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 유해를 해외에 뿌려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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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도쿄(東京)도 하쓰오지(八王子)시에 사는 시미즈 마사코(淸水正子·42)는 올봄에 왕고모(할아버지의 여동생)인 다나카(田中)의 유해를 일본 남쪽 이오시마(硫黃島) 바깥 공해에 뿌리고 왔다.

이오시마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곳. 전쟁 중 남편을 이오시마에서 잃었던 다나카는 늘 "죽으면 이오시마 부근에 뼛가루를 뿌려달라"고 말해 왔다. 시미즈는 "돌아가신 분의 소망을 이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마나시(山梨)현의 호무라 가네코(法村香音子·68)도 4년 전 중국을 방문, 압록강에 아버지의 유해를 뿌린 경험이 있다. 1961년까지 20년 이상 중국에서 의사로 일했던 아버지가 중국에 대한 애착 때문에 "죽으면 압록강에 뼈를 뿌려달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사후 추억이 담긴 해외에 유해가 뿌려지길 원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

일본의 장례문화는 화장 후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납골당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91년 초 "유해를 자연에 뿌리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장지의 자유를 추구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모임의 야스다 무쓰히코(安田睦彦)회장은 "갈수록 늘어 문제가 되는 납골당을 줄이는 한편 기존 장례형식에서 벗어나 편안히 쉴 곳을 찾아가자는 취지"라며 "전국 13개 지부에 회원이 1만1천여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9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 자연장(自然葬)'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2년 전 아내와 사별한 도쿄의 40대 회사원도 아내가 좋아하던 뉴질랜드에 유해를 뿌렸다.'장지의 자유를 추구하는 모임' 회원 15명의 유해도 중국·인도·몽골 등 해외에서 쉴 곳을 찾았다. 호무라의 아버지도 이 모임의 회원이었다.

도쿄의 장례전문회사인 후지이치는 지난해 3월 해외자연장 사업을 시작한 이후 26건을 집행했다. 올들어 매월 1백건 이상 문의가 올 정도로 인기가 높아지자 지난달 전문 자회사(게이트 재팬)를 설립했다.

후지키 신이치(藤木眞一)게이트 재팬 사장은 "배나 비행기로 외국바다에 뼈를 뿌린 후 지도를 첨부한 증명서를 발급하는데 요금은 최저 1천달러(약 1백20만원)"라며 "하와이가 압도적으로 많고 호주·괌도 인기"라고 말했다.

해외자연장 업체가 속속 증가하면서 서비스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묘석판매업체인 '메모리얼아트 오노야(大野屋)'는 프랑스 장의정보협회와 제휴, 유럽의 몽블랑산 정상에서 헬리콥터로 유해를 뿌리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요금이 18만엔(약 1백80만원) 이상인데도 산악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 회사의 시타무라 고지(下村貢司)상품기획담당은 "몽블랑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 등 2명의 유해를 지난달 뿌렸고, 올 가을엔 4명의 유해도 서비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계 회사인 '프로티어스에어 서비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앞 태평양에서 소형비행기로 유해를 뿌리는 영업을 하고 있다. 비영리단체(NPO)인 리스시스템, 불단(佛壇)제조업체인 하세가와, 선박우편회사인 니혼유센(日本郵船) 등도 잇따라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 법무성은 "장례절차를 지키는 한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더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야스다 회장은 "현지주민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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