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 47일간의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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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영화 2년째인 두산중공업이 47일간의 파업사태를 끝내고 8일 정상조업을 재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월드컵 기간 중에도 회사 문을 걸어 잠그고 계속됐던 파업 과정을 돌아보면 노사 양측에 과연 다른 선택은 없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노사 양측이 절차나 대화를 통한 합리적인 해결 대신 힘으로 맞서다가 감정대립으로 흐른 양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사태는 지난 3월 산업별 노조인 금속노조의 요구대로 두산중공업 노조가 회사에 집단교섭을 요구하면서 비롯됐다. 집단교섭은 노사 간의 자율결정 사항인 만큼 사측은 당연히 이를 거부했다. 두달여 협상에 진전이 없자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라는 지방노동위원회의 권고는 무시됐다. 이후 회사 출입을 봉쇄한 노조가 물품반출을 거부하고, 회사측은 계약 이행을 위해 완성된 물품의 반출을 시도하다가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지면서 감정대립으로 비화됐다.

대치과정에서 대화와 협상은 실종됐고, 사업장 봉쇄나 고소·고발 같은 실력행사만 있었다. 그동안의 파업 손실은 회사측 추정으로 3천5백억원에 이르며, 1천7백여개 협력업체들의 피해는 계산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시민·종교단체와 시청 간부 등으로 구성된 지역중재단의 중재마저 무산됐으면 파업은 끝없이 이어질 판이었다.

이번 파업사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노사 양측의 불신이다. 과거 한국중공업 시절부터 강성이던 노조측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던 새 주인 '길들이기'를 위해 실력행사에 나선 인상이 짙다. 사측 역시 집단교섭권 같은 민감한 사안들에 초기단계부터 성실히 임했느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발전 및 담수화 설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다투는 두산중공업이다. 새 주인 길들이기나 노조 힘빼기라는 감정적 대응으로 노사가 47일간 파업을 끌었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다. 다시는 이런 분규를 겪지 않도록 노사 양측의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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