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憲은 정략대상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개헌론은 뭔가 수상쩍은 데가 있다. 현실성이 없는 데다 개헌을 거론하는 주체의 면면도 그 저의를 의심케 한다. 개헌 자체가 목적이 아닌, 다른 정치적 목표를 위해 우회하는 방편으로 꺼내든 듯하다. 민주당이 엊그제 개헌 필요성을 공식 제기한 데 이어 이인제 의원도 개헌추진기구 결성을 제안하는 등 한발 더 나갔다. 자민련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미래연합 대표인 박근혜 의원도 동조한다. 대선 후보로 거명되는 인사 중엔 무소속 정몽준 의원 정도가 시기 문제 등을 이유로 부정적이다.

얼핏 상당수가 동조하는 듯하지만 그게 아니다. 우선 원내 과반수 의석을 점유하는 한나라당은 "차기 정권에서 공론화할 사안"이라며 당론을 확실하게 정해 놓고 있다. 민주당도 말이 공식화지 노무현 후보 측은 개헌 주장을 일축한다."현행 헌법도 분권화 요소가 얼마든지 강하다"며 당이 개헌 필요성으로 제시한 논거를 반박하고 있다. 이런 기저에는 당내 비주류 등 반노(反盧)세력이 개헌을 빌미로 자신들을 흔들려 한다는, 음모라는 의구심이 짙게 깔려 있고 실제 그런 측면이 없지 않은 듯하다.

개헌은 재적 의원 3분의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결국 현재의 개헌 목소리는 개헌을 연결고리로 정계개편을 도모하려는 정치구호로밖에 볼 수 없다. 대선 레이스에서 '소외'된 개인 또는 그룹들의 세(勢)결집을 노린 정략의 소산인 것이다.

그간 대통령 단임제나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등에 관한 반성적 결과로 개헌 필요성이 줄기차게 제기됐고,공감층이 적잖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공청회 등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과정·시일이 요구되는 개헌 문제를, 대선을 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제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개헌은 당파적 이해득실이나 따져 접근할 대상이 아니다. 개헌 내용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해 국민의 판단을 구한 다음 차분히 다뤄나가는 게 옳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