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수뇌마저 외면한 '西海'영결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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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앞으로 국군 장병들에게 조국을 위해 싸워달라고 과연 당부할 수 있을까. 서해 교전에서 전사한 해군 장병들의 영결식에 국방부 장관·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가 불참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비감함을 금치 못한다. 김대중 대통령을 대신해 군을 통솔한 이한동 총리는 무엇을 했나. 젊은 장병들의 죽음이 군 지휘부조차 외면할 정도로 무의미했던 것인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보인 국가 지도자들의 처신은 이해가 안간다.

무엇이 급해 실종자 수색도 안 끝난 1일 서둘러 영결식을 거행했는가. '해군장(葬)'이라서 의전상 해군참모총장 이상 군 관계자와 각료들이 참석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옹색하기 짝이 없다. 군 당국은 빈소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국군수도병원에 차려 놓고는 일반인을 위한 분향소조차 마련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영결식을 치렀다. 행사 일정조차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뭔가 쉬쉬하면서 영결식을 축소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높은 사람들은 내키지 않았다면 뜻있는 국민이라도 조문할 수 있도록 조치했어야 했다.

유족들이 오열하고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장병들의 빈소와 병실을 들르지도 않은 채 월드컵 참관차 일본으로 향한 처사도 유감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對)테러전을 수행하다 전사한 스탠 해리먼 준위의 고향을 방문해 부모를 위로하고 기도를 올렸다. 조국을 위해 싸운 단 한명의 병사, 수십년 전 전사자의 유골이라도 수습하려는 정부가 있기에 세계 최강의 미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장병들은 그래도 몸을 바쳐 나라를 지킬 것이다. 해괴한 정치논리에 사로잡힌 위정자가 아닌 국민을 위해 국군은 오늘도 국토를 지키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 장병에게 국가는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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