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서 꿈★을 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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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한:일본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랐어요.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일본팀을 별로 응원 안했거든요. 반일 감정이 아직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안 풀리고 있는 것 같아요.

▶일:일본 사람들은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서 많이 응원하는 것 같아요. 일본에 있는 친구나 부모님도 한국을 응원한대요. 한국에 사는 저보다 한국이랑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지난번 터키 대 일본전을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봤는데 한국 사람들이 처음엔 "일본 파이팅"하더니, 막상 경기가 시작돼자 터키가 잘 할 때마다 좋아하더군요. 슬펐어요.

▶중:저도 중국이랑 터키가 경기할 때 서울 상암경기장에 갔었는데 다들 터키를 응원해서 속상했어요. 거리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중국이랑 한국이 더 가깝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을 응원할거라 생각했거든요.

▶한:한국 전쟁 때 터키가 조건 없이 도와준 나라이기 때문에 응원하자는 분위기가 퍼졌어요. 하지만 중국팀 응원단장이 한국인이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중국을 열심히 응원했어요. 오히려 중국이 너무 한국의 축구를 비난해 서운했어요.

▶중:한국팀의 잘못이 아니라 심판 문제에 대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책임이 크죠. 또 중국은 워낙 넓고 많은 사람이 사는 나라라서 의견들도 아주 다양해요. 상당수 중국인들은 한국팀의 스피드와 정신력, 실력을 인정해요. 하지만 운이 좋다고 보는 사람도 많죠. 또 한국을 비난하는 중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는 탈북자 문제 등 정치적 원인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요즘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화가 나요.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에 대해 너무 나쁜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월드컵은 정치랑 상관 없는데 싸잡아서 중국을 비난하는 것 같아 섭섭해요.

▶한:사실 한국인들은 일본보다 중국에 대해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일본과 중국의 엇갈린 반응이 더 의외로 느껴졌어요. 유럽이 한국 축구를 폄하한다고 해서 같은 아시아인 중국까지 덩달아 그러는 것이 안타까웠죠. 반면 일본이 한국을 응원하는 걸 보고 '우리가 너무 속이 좁았다'고 생각했죠.

▶일: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한국이 반일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라요.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을 주변의 많은 나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지요. 여기 와서 보니까 한국 사람들은 '일본한테는 축구도 지면 안된다'고 생각하더군요. 일본인이 한국을 우호적으로 보게된 게 너무 신기해요. 한국 사람들이 반일 감정을 갖고 있듯, 한국을 안좋게 보는 일본인도 많았거든요.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 한국 사람들도 많이 우호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엔 거리에서 일본말을 쓰기조차 두려웠거든요. 서로 많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이번에 열심히 응원한 건 참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데 다들 한국팀을 응원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워요. 특히 일본이나 중국과는 더 그렇죠. 다 같이 잘해서 다음엔 아시아 국가들이 티켓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중:한국팀의 선전을 축하해요. 이번뿐 아니라 다음, 다다음 월드컵에서도 잘 했으면 좋겠어요. 중국팀은 아직은 멀었지만 한국이 48년 만에 16강 이상을 기록한 것처럼 중국도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자신 있어요.

▶일:이번 월드컵은 한국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어요. 한국이 4강까지 오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나지 못한 건 아쉽네요. 서로간의 우호적 분위기도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면 좋겠어요.

정리=이경희 기자

한국 축구가 꿈조차 꾸지 않았던 4강 진입 신화를 일궈냈다.'Pride of Asia'-지난 스페인전에서 등장한 카드 섹션의 문구처럼 한국팀의 선전(善戰)은 아시아의 꿈을 실현시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웃 나라의 반응은 대조적이었다. 공동 개최국인 일본의 '울트라 닛폰'은 '붉은 악마'로 변신해 한국을 응원했다. 반면 중국 언론은 섭섭할 정도로 한국의 실력을 폄하하는 보도를 한동안 내놓기도 했다. 한·중·일 젊은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인 이원경(22·서울대 노어노문학과), 중국인 장리나(張麗娜·27·학원강사), 일본인 후나코시 노리코(船越範子·26·연세대대학원 정치학과), 시라타니 도모코(白谷智子·26·연세대대학원 정치학과)등 한·중·일의 20대 여성 4명이 모여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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