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밟고 지나가기'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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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의 '탈(脫)DJ'작업이 구체화하면서 청와대와 민주당 간의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 참패 원인을 권력형 비리 만연,특히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부패행위 탓으로 돌리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측은 金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에 당내 DJ 지지파가 극력 반발, 범여권 내분은 확산 중이다.

민주당이 주요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 부패근절 대책을 세운 것은 잘한 일이다. 한나라당이 오래 전에 주장할 땐 극구 거부하다 뒤늦게 대단한 묘책이라도 마련한 듯 요란을 떠는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그렇더라도 시비할 일은 못된다. 청와대를 격발시킨 아태재단 해체나 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의 탈당건도 민주당이 처한 저간의 사정을 보면 있을 법한 요구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민주당의 발상엔 문제가 많다. 金대통령이 탈당했으니까 이제 '남'이고, '남'의 책임이니 나는 무관하다는 태도는 얌치없는 짓거리다. 집권에 따른 혜택은 다 누리고 정책실패와 부패에 대한 국민적 비판은 떠난 대통령에게 있다며 나몰라라 한다면 정당정치는 무의미하다. 이는 신의(信義)없는 본색을 확인시킬 뿐, 다시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정당의 도리가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다음에도 마찬가지의 딴청을 부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민주당의 청와대 비판이 金대통령의 양해 아래 이뤄지는, 인기 만회를 위한 '밟고 넘어가기'인지 여부는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그게 설령 '위장전술'이라 할지라도 기왕의 부패가 단죄되고, 부패가 발붙이지 못하게 할 제도가 도입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란에서 누차 지적했듯 부패척결은 입발림이 아닌, 진정한 의지가 우선돼야 한다.경제위기를 심화시키는 갈등 노출보다는 과오의 책임을 공유하고 자성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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