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의 대형 빌딩 두 채가 3년째 '유령건물'로 남아 있다. 중구 남대문로 옛 한일은행 본점과 옛 상업은행 본점 건물. 외환위기 당시의 은행 합병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서둘러 진행한 자산매각의 부작용으로 멀쩡한 빌딩을 놀려 수백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 것이다.
◇유령화한 옛 한일은행 본점=한일·상업은행이 합병한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은 1999년 11월 부동산개발업체인 SGS컨테크에 이 건물을 1천2백10억원에 팔았다. SGS컨테크는 일본문화 중심의 테마빌딩으로 꾸미려는 계획을 마련했다. 계약금·중도금 1백81억원을 내고 현대건설에는 지급보증을 얻어내며 시공권을 줬다.
그러나 2000년 한빛은행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잔금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통보하고 현대건설도 유동성 위기에 몰려 지급보증에서 발을 뺐다. 이로 인해 SGS가 중도금을 못 내자 한빛은행은 매매계약해지 및 명도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다.
이런 가운데 알짜배기 부동산은 자리 값을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지상 21층에 연면적만 1만3천1백68평.일대 사무실 임대료는 평당 9백만원(전세 기준)에 육박한다. 월세로는 매달 10억원에 가까운 돈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SGS컨테크가 부담한 관리비만 월 3천만원에 이른다. 옛 한일은행이 빌딩을 비운 99년 12월 이후 3백50억여원이 날아간 셈이다.
우리은행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낸 뒤 입찰로 다시 팔 계획이다. SGS컨테크는 은행 처사에 불만이 많다. 왜 지키지도 못할 '잔금 80% 대출'약속을 했느냐는 것이다.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잔금지급 기일이 1년반이나 지나 연체이자만 해도 위약금보다 훨씬 많은 3백40억원이나 된다"며 "이미 법률적으로 잘잘못이 판단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상업은행 건물도 덩달아 피해=인근 옛 상업은행(연면적 4천5백평)건물도 피해를 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이 빌딩을 함께 매입한 SGS컨테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아파트로 만드는 리모델링을 시작했지만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자금난으로 빠져 나가고 분양도 잘 안돼 지난해 1월 공사를 중단했다. 회사는 한일은행 빌딩을 팔아 남는 돈으로 공사를 재개할 계획이었으나 이마저 어렵게 됐다. SGS컨테크 이재학 팀장은 "상업은행 건물은 싱가포르 투자회사와 매매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