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DJ와 결별' 구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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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민주당의 '탈(脫) DJ'노력이 가시화하고 있다.

노무현(武鉉)대통령후보는 이날 당 정치부패근절대책위원장인 신기남(辛基南)최고위원, 함승희(咸承熙)법률특보 등과 조찬을 했다. 부패청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후보는 이어 부패방지위원회(위원장 姜哲圭)를 방문해 위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제도개선 방안을 청취했다.

후보는 26일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부패청산 간담회를 연다. 주말께엔 자신의 청산프로그램을 내놓을 계획이다.

청산프로그램에 회의적이던 한화갑(韓和甲)대표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기존의 (권력)비리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것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韓대표는 쇄신파 의원들이 주장하는 DJ와의 단절 방안에 대해서도 "합리적 제안은 수용한다.다만 일을 추진하는 데 비공개적인 방법이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辛위원은 후보와 헤어진 후 당 정치부패근절위원회를 열었다.위원회는 ▶의원 불체포 특권 제한▶한시적 특검 상설화▶검찰총장·국정원장·대통령비서실장·국세청장 인사청문회 도입▶고위 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등의 제도개선안을 확정했다.

위원회는 이와 함께 ▶김홍일(金弘一)의원에 대한 탈당 요구▶박지원(朴智元)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책임 추궁▶아태재단 사회 환원▶방탄국회 금지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절연(絶緣),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의 두가지 의미가 담긴 조치들이다.

부패청산 정국의 주도권을 민주당이 쥐고,여론의 지지를 얻겠다는 포석이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우선 위원회 안이 최고위원회의와 당무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동교동 구파를 비롯해 적지 않은 반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도에 따라서는 당 내분이 다시 한번 첨예화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의 당론으로 확정돼도 일부 법제화가 필요한 부분은 국회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주문 대로 순순히 따라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한나라당은 민주당이 감내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과거청산안을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홍일 의원 탈당 요구나 박지원 비서실장 인책 요구 등은 정치적 결단사항이다.

金의원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수용하면 된다. 이와 관련해 韓대표가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조찬간담회에서 후보는 이같은 결정에 소극적이었으나 辛위원 등이 강력히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辛위원은 "지도자 노무현"의 모습을 보일 것을,咸의원은 "이번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보는 인간적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맞는 말이다.많은 고민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불체포 특권=이날 특위는 의원 불체포특권의 제한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절대권력이나 집권자의 부당한 압력 또는 탄압으로부터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이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48년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만들 때부터 불체포특권을 헌법에 포함했다.

국회 법사위 임종훈 수석전문위원은 "국회의원의 의사당 내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 적용 여부로 논란을 빚은 적은 종종 있었지만 불체포특권이 문제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군사독재 아래서 정부의 부당한 야당 탄압으로부터 의원을 보호하고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장치로 작용했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15대 국회 후반기와 16대 국회에서 의원들의 검찰 소환을 막기 위해 이른바 '방탄국회'가 상시화하면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2000년에는 세차례, 2001년 다섯차례, 그리고 올 들어 모두 두차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 또는 단독으로 방탄성 국회를 열었다.

그러나 의원 불체포 특권 제한은 헌법을 고쳐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민주당 내에선 개헌 문제에 관한 본격적이고 깊이있는 논의가 없었다.그래서 '홍보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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