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잡아가는 초등교 도서바자회 일하면서도 마음 뿌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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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여기 △△초등학교인데요. 혹시 도서바자회를 하실 수 있나요? 공급할 책의 할인율은 어느 정도죠?"

이렇게 시작한 통화는 회의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말과 함께 끝을 맺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교 도서관 위원들이 찾아왔다. 도서관에서 선정한 책 1백여종의 목록을 내놓으며 다음 주에 바자회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 목록에는 60여개 출판사 1백30여종의 책이 출판사별 가나다 순으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지나치게 유행을 타고 있는 책들은 없었고 특이하게도 그림책이 30종 가까이 들어 있었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신다면 좀 무리가 있겠는데요."

"우린 그런 걱정 안 해요. 내용은 좋으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거든요. 물론 많은 아이들이 그 책을 사서 본다면 훨씬 좋겠죠."

매년 봄 가을 이제 웬만한 학교는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도서바자회가 이 정도까지 됐나 싶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계륵처럼 하자니 속상한 일이 너무 많고, 안 하자니 약간의 수익과 더불어 평소에 알리지 못한 다양한 책들을 홍보할 기회를 놓치는 거고…. 이렇게 도서바자회를 진행하기를 몇 해째. 이제는 가슴 졸이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출판사와 작가가 불분명한 책을 정가의 반도 안 되는 싼 값에 판매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학교에서 하는 행사는 교육의 연장일 텐데 저런 책들을 가져다 바자회를 하다니 하며 통탄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학부모들은 책 파는 일만 담당했고, 많은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해 두해 지나면서 지금은 학교 도서관이 중심이 돼갔고 학부모들이 읽고 보았던 책들을 도서바자회 목록에 올려놓았다.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책방에서 장시간 새로 나온 책들을 살피고 고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른 책이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주목을 받지 못하면 소리없이 사라져 버리는 데 반해 어린이 책은 생명이 길다. 애써서 만든 책은 언제든 누군가에게 지목돼 다시 나오게 되고 끊임없이 읽힌다. 이는 인터넷의 긍정적인 역할과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독서토론학습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의 몇몇 사이트를 넘나들며 알짜배기 목록을 추려낼 수 있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확인하고 또 다시 몇몇 단체와 출판사에서 발행한 정보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 학부모와 도서 담당 선생님의 바지런함으로 학교도서관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 학교에 책을 들고 나르면서 녹초가 됐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다. 도서담당 위원들과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 피곤이 싹 달아난다. 오늘도 그들은 밤 10시 넘어서까지 책방에서 책을 보다가 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이 이슥해지도록 어린이책을 살피는 정성이 이 학교에서만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린이책 전문서점 '동화나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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