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업 국회 民은 괴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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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7일 마감한 서울지역 아파트 5차 동시분양 1순위 청약의 경쟁률은 83.66대1이었다. 1992년 동시분양이 시작된 이래 사상 최고치다. 월드컵 열기로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썰렁했지만 막상 청약에는 당첨 뒤 프리미엄을 챙기고 팔아버리겠다는 가수요자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이런 '청약 대란'을 촉발한 큰 요인 중 하나는 국회가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건교부는 지난 3월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주택건설촉진법을 고쳐 6월부터 서울지역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4월 19일 국회 건교위를 통과해 법사위로 넘겨졌지만 그후 국회 공전으로 먼지만 쌓이고 있다.

이로 인해 서울에서 아파트 전매제한조치가 시행되기 전에 매매차익을 내려는 투기열풍이 막판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다.

현 국회상황에선 7월초 6차 동시분양은 물론이고 8월초 7차 동시분양 때까지도 이 법안이 실시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결과적으로 국회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회의 직무유기는 이뿐만 아니다.악덕 사채업자로부터 서민을 보호하기 위해 최고이자율을 30~90%로 제한하는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은 지난 2월 재경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넘겨졌지만 그 뒤론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최고 연평균 2백58%까지 달했던 사채이자율은 올 1월 1백66%까지 떨어졌으니 4월 1백78%·5월 1백81% 등으로 다시 상승하고 있다는 게 금감원의 분석이다. 금감원 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신고 건수도 1월 2백49건에서 5월 3백38건으로 크게 늘었다.

정부는 또 지난 5월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상가가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국세(國稅)보다 우선 변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재경위에선 심의조차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용직 근로자에게 고용보험 혜택을 부여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나 기존 서점과 충돌을 빚고 있는 인터넷 서점의 할인율을 정가의 10% 이내로 규정한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 장기이식 절차를 간소화한 '장기이식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 등 처리가 시급한 민생법안이 부지기수다.

법률안은 아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투입된 공적자금 가운데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4조5천억원에 대한 자금을 지급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금보험공사 채권 차환발행 동의안'도 마냥 처리가 늦어질 경우 국제신인도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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