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검거 세번씩… 입원·수감생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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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평안남도 온천군의 피혁공장의 노동자였던 鄭씨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던 북한 당국의 지시로 앞바다에서 조개잡이 외화벌이를 하던 중 동료들과 함께 '체제 비판' 발언을 한 게 탈북의 계기가 됐다.

누군가의 밀고로 국가안전보위부원이 "조사할 게 있다"며 鄭씨를 소환하자 '행방불명돼야 가족들이라도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달아나 1996년 8월 중국에 잠입했다.

鄭씨는 베이징(北京)에 도착, 한국대사관 주변을 배회하다 "대사관에 들어가봐야 소용없으니 밀항선을 타라"는 동료 탈북자 등의 얘기를 듣고 톈진(天津)으로 향했다.

톈진에서의 상황도 여의치 않아 홍콩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광저우(廣州) 인근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되고 말았다. 공안당국은 구금 4개월만인 1997년 3월 鄭씨를 북송키로 결정했다. 鄭씨는 북송기차에서 한손이 침대봉에 수갑으로 묶인 상태에서 자살을 기도했으나 그를 감시하던 공안원에게 적발됐다.

"북송되면 처형된다"며 눈물로 호소하던 鄭씨는 북한과 중국 접경 투먼(圖們)역에서 북측에 넘겨지기 직전 가까스로 탈출했다.

10개월을 방황한 뒤 鄭씨는 유모(37)씨 등 탈북자 두명과 함께 베트남에 잠입해 하노이의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대사관측은 "도와줄 방법이 없다"면서 차비와 지도를 주고 미얀마행을 권유했다.

鄭씨는 다시 중국을 거쳐 미얀마 라소시로 들어갔으나 이틀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구금 사흘만에 중국으로 되돌려 보내진 鄭씨는 또다시 미얀마로 잠입해 한국대사관을 찾는 데 성공했다.

대사관에서 탈북경위 등에 대해 조사를 받은 뒤 한달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살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자 병이 생긴 것이다.

그러던 중 병원으로 경찰이 들이닥쳤다. 불법입국 혐의로 6개월형을 받고 복역하다 대사관측의 노력으로 한달만에 석방됐다. 탈북 1년4개월만인 1997년 12월 29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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