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감 연구 성과도 못믿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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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노벨상 수상감'이라며 과학계를 흥분시켰던 한 물리학자의 연구에 대해 조작 의혹이 제기돼 전세계 과학계가 떠들썩하다.

논란의 주인공은 미국 벨 연구소의 얀 헨드릭 쇤 박사. 그의 실험 결과가 조작됐는지 알아내기 위해 벨 연구소는 자체 진상 조사팀을 만들어 현재 조사 중이다. 쇤 박사의 논문을 실었던 학술지 사이언스도 노벨상 수상자 등 5명의 과학자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쇤 박사는 나노(10억분의 1m) 크기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냈다. 또 특수한 방법으로 유기 물질의 전기적 성질을 마음대로 바꿔 전기가 완전히 안 통하는 절연체로 만들었다가, 전기 저항이 0인 초전도체도 되게 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발표했다.

그의 연구는 워낙 획기적인 것들이어서 2000년부터 지금까지 2년6개월동안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10편, 네이처에 7편의 논문이 실렸다.

그런데 올해 초 쇤 박사의 연구 중 나노 트랜지스터 등 일부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쇤 박사의 연구를 따라잡으려고 많은 과학자들이 같은 실험을 했지만 그와 비슷한 결과를 얻은 연구진이 하나도 없었던 것. 게다가 쇤 박사의 논문에는 전혀 다른 물질인데도 성질이 거의 비슷하다는 내용이 있어 의혹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일부 과학자들이 벨 연구소와 사이언스 등에 이의를 제기했고,두 기관이 조사에 나섰다. 이같은 상황은 사이언스를 비롯해 뉴욕타임스·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에도 최근 보도됐다.

과학자들은 쇤 박사의 연구 중 특히 물질의 '불규칙 신호 특성' 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외부에서 일정한 신호를 넣었을 때 물질마다 반응하는 방식이 달라서 전혀 다른 특성을 보여야 하는데 쇤 박사의 측정 결과는 물질에 관계없이 모두 비슷한 특성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등에 따르면 쇤 박사는 이에 대해 "설명하기 힘든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분명한 측정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벨 연구소 측은 "조사 결과는 여름 늦게 밝혀질 것"이라며 "데이터를 정리할 때 컴퓨터에 오류가 생겼거나, 실험 장치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편 1999년에는 미국의 세포생물학자가 발표한 '고압선의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연구가 조작임이 밝혀진 바 있다. 과학자가 조작한 것은 아니지만 99년 공룡과 새의 중간 형태를 띤 1억2천5백만년 전의 화석이 중국에서 발견돼 고생물학계를 뒤흔들었다가 2년 뒤인 2001년 문제의 화석이 중국의 농부가 정교하게 만든 가짜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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