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8강]두번 울린 안정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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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결국은 '안·정·환'(26·이탈리아 페루자)이었다.

연장전도 다 끝나가 승부차기에 들어갈 듯한 분위기,그 틈바구니에서도 그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얻어낸 페널티킥. 그때 대전 월드컵경기장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과 함께 안정환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관객들의 떠나갈 듯한 환호. 그가 키커였다. 골문 왼쪽으로 낮게 깔아 찬 슈팅, 그러나 이탈리아 골키퍼 부폰은 몸을 날리며 막아냈다. 천금같은 찬스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순간, '반지의 제왕'은 땅에 주저앉았다.

그의 실축은 아니었다.골키퍼의 선방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더욱이 전반 19분 비에리의 헤딩골로 선취점을 내주자 그의 가슴은 아려왔다. 부담감은 몸을 무겁게 했다.

몇번의 찬스가 그에게 주어졌으나 그는 만회하려는 마음이 앞서 비틀거리기만 했다. 다만 전반 36분에 박지성의 패스를 받아 힐킥으로 방향을 튼 뒤 몸을 돌려 슈팅하는 장면에서는 유럽 무대에서 뛰었던 경험이 그대로 드러났다.

물러설 수는 없었다.이탈리아는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나라였다. 그 나라에 대해 분명히 자신의 존재를 확연히 드러내야 했다. 게다가 온 국민이 그에게 거는 기대감-.그는 칼을 갈았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포르투갈전을 끝내고 히딩크 감독이 "안정환에겐 90분을 다 뛴 경험이 분명 큰 약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으나 그는 여전히 체력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연장전 승부다.

이미 세명의 선수가 다 교체돼 더 이상 그를 대신할 선수도 없었다. 자신과 마지막 승부를 벌여야 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1백20분의 끝을 향해 가던 연장 후반 12분, 이영표가 왼쪽에서 높게 띄운 센터링이 그의 머리를 향했다.8일 전의 미국전이 떠올랐다. 비슷한 위치. 그는 과감히 떠올랐다. 골인-.

두시간 내내 그의 가슴을 짓누르던 실축의 멍에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그리곤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인 멋진 반지의 키스를 하늘 높이 띄워보냈다. 그 키스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이탈리아에 부메랑이 되어 비수처럼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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