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도 선거봉사 잘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13 지방선거 날 부재자 투표함 호송·경비에 동원된 경찰관으로서 서구청 투표소에서 겪은 일이다. 나는 서구청 선관위에 30분 일찍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 때 투표소가 설치된 구청 현관문에서 붉은 악마 복장을 하고 어깨띠를 두른 젊은 여성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시각·지체 장애인들의 팔짱을 끼고 그들을 기표소까지 안내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어서오세요. 투표소는 이쪽입니다"는 말과 함께 공손히 절을 하며 친절히 안내했다.

투표 마감 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안내하는 것을 보고 선관위 직원에게 "저 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그는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을 다섯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하면서 상냥함과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경찰관들도 두시간 이상 일제 검문검색 근무를 하자면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는데 하도 대견스러워 다가가 보았더니 어려 보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이냐고 물었더니 중앙여중 3학년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 있을까 지금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자원봉사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참된 풀뿌리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어 참 기분좋은 날이었다.

강정훈·부산 서대파출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