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폭풍'휘말린 세계축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유력 우승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하고, 축구의 '제3세계' 국가들이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이변이 잇따르면서 세계 축구계가 그 '후폭풍'에 휘말리고 있다. 그 첫 회오리는 단 한골도 못넣고 조별리그 꼴찌로 16강에서 탈락한 세계 최강 프랑스다. 로제 르메르 대표팀 감독에 대한 사임 압력은 물론이고, '아트 축구'의 오만을 나무라는 비난도 드세다. 선수들이 돈과 명예에 취해 축구장보다는 파티장을 즐겨 찾았고, 전 대회 우승국으로 자동출전하는 바람에 예선전을 통해 발과 호흡을 맞추고 전열을 가다듬는 치열한 준비과정을 갖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돈다. 게다가 '젊은 피'충원을 게을리 한 반성이 가세하면서 프랑스 축구는 구조개편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예선리그에서 축구 강국들의 대거 탈락을 이변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국가간 축구전력이 그만큼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 못한다. 문제는 이들 강국의 부진과 탈락이 결과적으로 전체 월드컵 경기의 질과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월드컵은 세계인이 지켜보는 지상 최대의 축구 축제다. 따라서 세계 최고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무대여야 한다. 불행히도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세계의 수퍼스타들은 대부분 소속 프로축구 챔피언리그에서 혼신을 다해 뛰다 다치거나 지칠 대로 지친 '부상자 군단'들이었다.

왕년의 수퍼스타이자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프란츠 베켄바워는 "지금 세계 수십억 인구들은 지칠 대로 지친 스타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고 개탄했다. 유명 구단 스타들이 월드컵 무대에 출전하기까지 많게는 80~90 게임을 치러내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부상으로 아예 출전 못하는 경우도 많고 대부분은 진이 빠진 채 월드컵 무대에 나선다. 따라서 경기의 질과 월드컵의 장래를 위해 월드컵 출전에 임박해 치르는 게임 수를 대폭 줄이자고 베켄바워는 제안한다. 그는 2006 월드컵 주최국 독일의 조직위원장이어서 운영방식 등에 관한 그의 구조개편 주장은 남달리 무게가 실린다.

드라마 같은 아시아 축구의 성공과 실패 역시 축구의 세계화 전략과 관련해 또다른 후폭풍을 예고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의 참담한 패배는 만리장성 같은 '기술의 벽'과 해외무대 경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한국은 기초체력과 스피드·압박수비로 한국형 '토털 사커'를, 일본은 그들 전자제품처럼 '작지만 강하고', 일정한 리듬에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축구'의 새 모델을 선보였다. 축구 후진국들의 벤치마킹이 뒤따르면서 아프리카 돌풍과 어울린 신흥 축구 파워의 등장도 내다보인다. 축구의 변방에서 중심권으로 급거 진입한 미국의 파워도 주목을 요한다.

후폭풍은 월드컵 운영체인 국제축구연맹(FIFA)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지구촌 최대의 황금 스포츠를 운영하면서도 재정 파탄과 부패 스캔들, 회장 1인전횡 체제 등 말썽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규모 빈 자리 사태를 빚은 입장권 판매행정의 난맥, 이윤에 너무 집착하는 고압적 자세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눈앞의 이윤보다도 프로리그 및 광고계약자, 주최국과의 스케줄 조정 등을 통해 월드컵을 명실상부한 '최고스타들에 의한 최고수준의 대회'로 우선 만들고 볼 일이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