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길목서 만난 韓·伊 명감독 히딩크- 벤치 '두뇌싸움' 관심- 트라파토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한국-이탈리아의 16강전을 무대로 펼쳐질 유럽 출신의 두 명장 조반니 트라파토니(63)감독과 거스 히딩크(56)감독의 지략 싸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 감독은 풍부한 야전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술과 용병술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탈리아의 명문 AC 밀란과 국가대표팀에서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한 트라파토니 감독이 선수로서는 더 뛰어났으나 감독이 된 이후에는 둘 다 나름대로 세계 축구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세웠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트라파토니 감독은 월드컵을 제외한 모든 유명 대회의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아봤고,히딩크 감독도 199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두 감독은 현재의 대표팀을 맡은 뒤 팀 컬러를 획기적으로 바꿔가고 있으며, 아무리 스타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전체 팀워크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면 내친다는 점에서도 공통성이 있다. 트라파토니 감독은 극도로 수비에 치우쳤던 이탈리아 축구를 다소의 위험부담을 각오하면서도 공격형으로 전환하고 있다. 94년 미국 월드컵 때 맹활약했던 최고 인기스타 로베르토 바조(35·브레시아)를 대표팀에서 제외하고 젊은 신예들을 대거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게 잡음이 일었으나 일절 신경쓰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과 무척이나 닮은 부분이다.

그러나 두 감독의 지휘 스타일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트라파토니 감독은 지난 14일 천안에 캠프를 차린 이후 훈련 내내 선수들을 꾸짖는 등 엄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축구장의 절반만 사용하는 미니게임에서 트라파토니 감독은 가끔씩 게임을 중단시키고 잘못한 선수 개개인을 매섭게 질책했다. 패스 미스를 범한 미드필더 잔루카 참브로타(25)가 야단맞는 모습은 마치 '학생지도부에 끌려온 문제학생'을 연상시켰다.

트라파토니 감독이 이처럼 엄하게 구는 데에는 팀 내에 유명 스타들이 즐비하다 보니 이들의 튀는 개성을 좀 죽여야만 팀워크가 살아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히딩크 감독은 자상하고 부드럽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 농담도 잘하고, 훌륭한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의 머리를 매만지는가 하면,갑자기 선수들 등에 올라타는 등 장난꾸러기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선수들의 잘못에 대한 외부의 매서운 지적도 직접 바람막이가 되어 차단한다. 이런 태도는 지금까지의 한국인 지도자들에게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이 덕분에 늘 엄숙하고,때로는 살벌하기까지 한 분위기에서 억눌려 지내온 한국 선수들은 기가 살았고,팀 내 의사소통이 활발해졌으며,장기간 합숙훈련에서도 편안함을 느꼈다.

천안=전진배 기자, 강병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