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나라 몽골] 칭기즈칸 후예들 "말 달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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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끝이 보이지 않는 몽골의 푸른 대평원을 보면서 입안에서 계속 맴도는 말이다. 동·서·남·북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목적지도 없다. 무작정, 그것도 말 위에 올라 거칠게 채찍질을 하며 달리고 싶은 충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 간절하게 용솟음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거리.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은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한 겨울엔 영하 수십도의 황량한 벌판으로 변하지만 초원의 풀이 파릇파릇한 6~9월은 여행하기 좋은 때다. 특히 몽골의 최대 축제인 나담축제가 있는 7월(11~13일)엔 해외 여행객이 대거 몰려든다.

◇초원과 유목민들=울란바토르에서 남서쪽으로 2백80㎞ 떨어진 13세기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은 몽골 유목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차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끝이 없는 푸른 초원과 파란 하늘이 사각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다는 듯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양·소 등이 있다.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짓고 있지만 워낙 넓은 초원인지라 캔버스 한 귀퉁이의 작은 소품처럼 보인다.

어딜가나 유목민·가축떼

그러가 하면 갑자기 말을 탄 유목민들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가축을 몰아가는 광경이 시야에 가득찬다. 순간 잔잔한 캔버스의 풍경화가 사라지고,자연의 흐름을 돌려놓는 인간의 도전적 모습이 TV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의 역동적 동화상처럼 와닿는다.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확 트이고 묵직했던 머리가 맑아지면서 몸 안에서 또 다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태양과 사막 체험=몽골 남부를 동서로 5천㎞ 가르며 국토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고비사막. 이곳에는 선글라스를 무색하게 하는 작열하는 태양과 금방 웃옷이라도 날려버릴 것같은 거친 바람이 있다. 길가 곳곳엔 하얀 뼈를 드러낸 채 동물의 주검이 썩어갔다. 아득하게 멀리 보이는 사막 한 복판의 신기루까지 보인다. 준비한 물 한모금을 마시기가 겁난다.

어떤 생명도 살 수 없을 것같은 이곳에도 생명이 있다. 다름아닌 몽골 유목민과 그들의 가축이다. 흙먼지를 날리며 자동차로 20~30분 달려가다 보면 멀리 말·낙타·양 같은 가축의 무리가 보인다. 그러면 그 주변에는 영락없이 손톱만하게 보이는 한두 채의 게르(몽골 유목민의 이동식 가옥)도 있다. 저주받은 '불모의 대지'같은 이곳에서도 몽골의 유목민과 가축들은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막의 밤은 별 축제

고비사막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모래사막은 아니다. 모래사막은 전체의 3% 정도에 불과하고,나머지 대부분이 거친 흙자갈과 드문드문 풀이 있는 황량한 초원이다.

고비사막 토브신 휴양소에서 모래사막을 보려면 또 다시 1백여㎞를 달려야 한다.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다. 엉덩이에 멍이 들 각오를 하고 달려 도착한 모래사막은 규모는 작지만 황금빛 모래바람을 맞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공룡화석이 발견된 기이한 형태의 계곡도 바로 옆에 있어 색다른 볼거리로 와닿는다.

사막 체험이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면 큰 후회를 한다. 밤 10시가 넘어야 해가 지는데 고비사막의 밤하늘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지상 최대 천문과학관의 돔이 된다. 지평선 양끝까지 총총히 펼쳐진 별들의 축제는 보는 이를 사막 위에 벌렁 눕혀버린다.

◇'게르'와 '허드헉'=몽골 여행 때 초원 만큼 흔히 볼 수 있는 게 유목민 전통가옥인 '게르'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도 게르를 짓고 사는 서민들이 있다. 게르는 나무막대기로 골조를 세운 뒤 양털로 짠 두툼한 천을 덮어 만든 원통형 천막집. 뜨거운 바깥 날씨에도 내부는 의외로 덥지 않다. 중앙엔 추운 겨울에 필요한 난방용 난로가 있다. 휴양지의 게르는 1박에 30달러선으로 비싼 편이다.

전통가옥 게르 체험도

몽골의 전통음식엔 우리에게 몽골식으로 잘못 알려진 '샤브샤브'나 '몽골리안 바비큐'는 없다. 유목민은 농경민처럼 재배를 하지 않아 야채는 거의 없고,초원의 풀은 가축의 먹이로 쓰기 때문. 대신 몽골인들의 주식은 육류(양고기·소고기 등)와 유가공식(말젖 등으로 만듦)이다. 명절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먹는 고급 요리로 '허르헉'이 있다. 양고기를 뼈째 적당한 크기로 잘라 통에 넣고 양념과 함께 뜨겁게 달궈진 돌을 채워 서너 시간 정도 찌는 요리다. 가끔 돌가루나 흙이 씹히긴 하지만 기름기가 빠진 양고기의 담백한 맛이 훌륭하다.

◇여행 쪽지=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까지 몽골항공 비행기가 주 3회(월·수·금)운항한다. 대한항공도 부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몽골관광청 서울사무소(02-732-2041)나 몽골현지법인인 디도여행사 서울사무소(02-777-1722)를 통해 미리 숙박·교통가이드 등을 예약해야 고생을 덜한다. 롯데관광(02-399-2308) 등에서는 몽골 패키지 여행상품(5박6일 1백49만원)을 내놓고 있다.

울란바토르=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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