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타격… 大選정국 요동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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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13 지방선거 결과는 정치권에 태풍을 몰고왔다. 이 바람은 지금까지의 정치권 질서와 구도를 몽땅 뒤흔들어 놓을 기세로 불어닥치고 있다.

우선 민주당과 노무현(武鉉)후보의 앞날에는 암운이 드리우게 됐다.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 이반현상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전패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연승행진을 했던 서울은 물론 98년 지방선거 때 압승했던 경기와 인천에서도 큰 표차로 뒤졌다.

역대 대선 때마다 민주당이 영남지역의 열세를 호남과 수도권에서 만회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같은 결과는 뼈아프고, 올 12월 대선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다.

후보가 배수진을 쳤던 부산·경남에서마저 '노풍(風·노무현 지지바람)'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영남 공략을 목표로 했던 민주당의 대선전략은 근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당장에 선거책임론을 둘러싸고 불어닥칠 후폭풍을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문제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를 둘러싼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광옥(韓光玉)최고위원은 13일 "선거결과가 나쁘다고 해도 후보 이외의 대안이 없고, 한화갑(韓和甲)대표가 책임질 일도 아니다"면서 조속한 수습을 촉구했다. 하지만 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 등 비주류 일각에선 "당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지도부에 대한 전면적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이를 둘러싼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게다가 민주당 일부 중진은 "이번 기회에 자민련과 민국당,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대표를 받아들여 민주당을 전면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이는 후보와 韓대표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자칫 민주당이 쪼개지는 사태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반면 후보쪽에 서있는 당내 쇄신파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전면적인 차별화를 통해 '노무현 당'으로 탈바꿈하는 것만이 민주당의 살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주당의 갈등이 진화보다는 확산쪽으로 갈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자민련의 사정도 다급하다. 충청권에 대한 김종필(金鍾泌·JP)총재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충북·대전에서 한나라당의 정당지지도가 자민련을 앞서고 충남에서조차 박빙인 것만 봐도 그렇다.

충남지사에는 자민련 소속의 심대평(大平)후보가 3선이 됐지만 후보 개인의 지지에 불과할 뿐 자민련에 대한 신임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자민련 의원의 탈당 등 사태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金총재 역시 민주당과의 합당이나 제3의 신당 창당 등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압승을 한 한나라당 이회창(會昌)총재의 경우 '대세론'을 확산하면서 정국주도권 장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발동할 가능성을 우려해 조심스런 행보를 이어갈 전망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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