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자 눈으로 해석한 라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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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우리는 모두 신경증에 걸려 있다.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신경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도착이나 정신병에 걸렸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좋은 일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무의미한 생각이나 행동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 기질적인 이유가 없는 데도 고통스런 신체 증상에 시달리는 것, 한 뼘만 물러서서 바라보기만 해도 덧없는 일에 스스로 시달리며 열렬히 집착하는 것, 그런 일은 자신의 삶을 곤고하게 하고, 가까운 타자들의 삶 또한 망가뜨리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힘겨운 삶을 떨치기는 커녕 그것에 잠겨 있고, 나의 그런 삶에 연루된 타자 가운데 일부는 그런 고통에 기꺼이 동참한다. 우리 자신, 그리고 타자가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사태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신경증의 상태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정신분석학은 하나의 교양, 그 말의 고전적이고 진지한 의미에서 교양이 돼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신분석학은 학문의 하나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박약한 이해에 바탕을 둔 범박한 소개서만이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깡의 재탄생』의 출간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이다. 프로이트 이후 가장 뛰어난 정신분석학자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정신분석학을 철학적으로 심화시켰으며, 현대의 다양한 지적 분야와의 가교를 놓은 것으로 추앙되는 라캉에 대한 본격적이고 제대로 된 연구서가 국내 학자들에 의해 저술된 것은 이것이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 또한 매우 사려 깊다. 초심자를 위해 제1부에 임상적인 것을 중심으로 라캉의 이론에 대한 자상한 해설 격의 글을 싣고, 2부에서는 라캉과 다양한 이론가들을 대조하고 연계해 분석하고 있으며, 3부에서는 라캉 이론이 인접분야에 활용되는 바를 다루었다. 전반적으로 라캉 이론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탐구 내지 정신분석학의 메타 이론적 측면에 책 전체가 강하게 경사된 것은 흠이라면 흠이다. 하지만 그런 경사 덕에 라캉의 사상사적 위치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게 된 것은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의의는 이 책의 편집자들이 라캉에 대한 우리 지식계의 이해 수준을 스스로 점검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지식계 전반에서 정신분석학과 라캉에 대한 이해의 수준과는 별도로 일각에서 진척된 논의의 수준이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로 인해 책이 어려워져서 아쉽게도 대중성이 많이 희생됐다. 그러나 라캉에 대한 연구서까지 공유하게 되는 라캉의 난해함은 무언가 말해주는 바가 있다.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면 쉽게 잘 읽힌다. 모범적인 문필가의 글을 읽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라캉은 프로이트와 달리 매우 어렵다. 어떤 때는 일부러 명료하게 말하지 않고 반쯤만 말하고 마는 것 같은 그의 어법에 염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명료함과 라캉의 난해함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데가 있다. 라캉에 대한 진지한 독서는 프로이트의 사상이 이해하기 쉽다는 생각이야말로 잘못된 것이고, 프로이트의 텍스트야말로 내부의 복잡성에까지 우리가 파고드는 것을 일정 정도 방어하고 있는 현혹적인 텍스트였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오히려 라캉이야말로 프로이트의 그런 점을 깨우쳐주고 해석을 향한 욕망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셈이다. 『라깡의 재탄생』을 읽노라면, 라캉이 유도한 욕망에 기꺼이 자신을 맡긴 이들의 글을 읽을 수 있으며, 같은 욕망에 감염돼감을 느끼게 된다.

김종엽<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라캉의 우리말 표기는 '라캉'이 올바르나 책 제목의 경우 출판사 방침대로 '라깡'으로 표기했습니다.

자크 라캉은…

▶1901년 프랑스 파리 출생

▶36년 정신분석학 논문 '거울단계' 발표

▶53년 라캉의 '세미나' 시작

▶60년대 '세미나' 프랑스 학문 중심지로 성장

▶64년 국제정신분석학회(IPA)로부터 제명,

파리프로이트학파(EFP) 창설

▶66년 논문 및 강연 모음집 『에크리』 출간

▶80년 프로이트원인학파(ECF)창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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