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춤추며 놀자구요 : 홍 신 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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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걸리는 게 왜 이리 많은지. 돈만 좀더 있으면, 나이만 좀더 젊다면, 외모만 좀더 번듯하다면, 재능만 좀더 있다면…. 그런것 따져 무엇하랴. 무용가 홍신자는 분명 이 시대의 자유인이다. 1960년대 중반 충청도 양반가의 딸로 미국 유학을 결행, 스물일곱의 늦은 나이에 무용에 입문한 것만 해도 그렇다. 또 전위무용가로서의 성공가도에서 홀연 인도로 구도의 길을 찾아 나섰던 그다. 마흔이 넘어 열두살 연하의 미술학도와 결혼했고, 딸을 낳고 이혼한 뒤에도 전 남편과 스스럼없이 친구로 지낸다. 지금껏 우리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의 삶을 보여줬던 그가 이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느림의 철학, 게으름의 미학처럼 현대인에게 솔깃한 얘기가 또 있을까. 그의 손짓에 이끌려 경기도 죽산에 있는 그의 토담집을 찾았다. 자, 여기, 몸과 영혼의 자유를 위한 그의 작은 춤판에 끼어보자.

#프롤로그

오전 6시. 절로 눈이 떠진다. '고맙게도 내게 또 하루가 주어졌구나'. 온 몸을 찬찬히 훑으며 안부를 묻는다. 배를 제일 먼저 만져보며 혹시 어제 먹은 음식이 아직 찌꺼기로 남아 있나 살피고, 단전 호흡을 해본다. 하품도 크게 하고, 소리도 맘대로 내보고…. 아, 살아있는, 자유로이 움직이는 몸이 주는 이 전율.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두시간쯤 그렇게 자리에 누워 몸과 '놀면서' 오늘 하루 마주칠 사람들과의 기쁜 만남을 상상한다.

'몸과의 놀이'-. 그 짜릿한 기쁨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 근 4년 만에 책을 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명진출판). 자유는 언제나 나의 화두였지만, 특히 이번엔 스스로의 구원신호가 바로 몸의 소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몸과 대화하고 노는 법 등을 담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자, 몸과 놀아봐요. 몸을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몸과 놀 줄 모르게 된 순간, 자연인이던 당신은 영혼의 자유도 잃은 겁니다.

#1막:미궁(迷宮)

그렇다. 그건 미궁이었다. 60년대 중반. 어렵게 유학길에 올라 호텔경영학을 시작했던 그가 무용가로선 '할머니'같은 나이에 무용학도로 변신했을 때만 해도 드디어 길을 발견한 것이리라 믿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는지도 깨달았다. 그 이전까지 그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충청도 양반인 그의 집과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서슬 퍼렇던 한국사회의 것이었다. 허벅지를 내보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성기를 지칭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때였다.

춤을 추면서 몸의 언어를 다룰 줄 알게 됐다. 뉴욕 타임스 등에서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를 둔 서양 전위무용의 꽃'이란 찬사도 받았다. 그런데 그곳은 종착역이 아니었다. 나를 찾을 수 없는 허망한 몸짓-. 결국 서른여섯살에 인도로 떠나 라즈니시의 제자가 됐다. 이번에 그는 철저하게 몸을 몰아쳤다. 몸을 제대로 누이는 것조차 무슨 거침없는 욕망의 회귀쯤이라도 되는 양 경계했다. 에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몸에 가한 폭력과 다름 없었다.

3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춤은 고사하고 왼쪽 다리가 짧아져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문득, 몸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는 각성이 일었다. 생의 본질과 깨달음, 우주의식에 대해 천착했던 그가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었다. 그제야 그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미안하다. 몸을 끌어안은 뒤, 그는 자신의 몸을 살리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미궁을 벗어났다.

#2막:웃는 돌

81년 뉴욕에서 그가 구성했던 무용단 이름은 '래핑 스톤', 즉 웃는 돌이었다. 돌에도 영혼이 있을지니-. 자연인의 삶을 찾아 하와이를 거쳐 한국에 돌아와 안성 죽산의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웃는 돌 명상캠프와 공연장을 차리고 터를 잡은 지 어느새 9년. 그곳에서 그는 하늘과 바람과 달과 나무를 벗삼아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몸과 사랑을 나누면서 산다.

게으름의 미덕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그는 가엽다. 또 배가 나오면 뱃살을 미워하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으로 땜질하고, 피부가 거칠어지면 화장을 진하게 하는 이들이 가엽다. 먹는다는 행위의 중요함을 알지 못하고 소중한 몸에 쓰레기를 처박듯 아무것이나 쑤셔박은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보양식과 건강식품 등으로 엉뚱한 사랑을 베푸는 이들은 몸에 '집착'하는 것일 뿐이다.

한때 그에게도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무언가 다른 일을 좀더 열심히 하기 위한 동기였다. 그러나 몸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그 부름에 따라 사는 순간, 삶 전체가 우주적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질서는 영혼을 기쁘게 하는, 좀더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꿈꾸게 한다.

#3막:뜬구름

홍신자. 속세의 이름을 그는 종종 잊고 산다. 아니, 전위무용가·명상가·베스트셀러 작가 등, 그 이름에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들이 그를 족쇄처럼 숨막히게 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홍신자답다'라는 틀 안에서는 도저히 자신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선언했다. "날 '뜬구름'이라 불러!"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언제든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가 스스로의 이름을 버렸듯이 웃는 돌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는 이름을 묻지 않는다. 과거나 미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그들은 영혼이 원하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섬·바다·옥돌·이끼·민들레·나뭇잎…. 그들과 넓은 텃밭에 씨뿌리고 야채 키우며, 그 야채와 현미오곡밥으로 성찬을 즐기면서 명상하는 삶은 평화 그 자체다.

한중망(閒中忙)이랄까. 요즘은 오는 28일부터 이틀간 뉴욕에서 황병기·강권순씨와 펼칠 무대 준비에 은근히 바쁘다. 월드컵 개최를 기념해 아시아 소사이어티와 우리나라 문화관광부가 함께 마련한 공연이다. 총 4막 중 3막에선 춤이 아닌 목소리로 황병기씨의 가야금곡에 맞춘 75년 초연작 '미궁'을 뉴욕인들에게 처음 선보인다. 올해로 8회째 맞는 죽산예술제도 구제역 때문에 연기돼 9월에 시작되지만 그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뜬구름은 그렇게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에필로그

남들은 나를 에너지가 넘치는 '특별한' 여자라고 말한다. 지금 뉴욕에서 패션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는 딸조차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 같아서 두려웠노라고. 그럴까. 난 다른 사람처럼 내 자신을 사랑했을 뿐이다. 그 영혼을 사랑했기에 자유를 주고 싶었고 그래서 몸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몸은 내 영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그리고 자연과의 대화를 위한 통로가 돼주었다.

내 나이 예순둘.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며 살다가 마흔이 되기 전에 자살해 버리겠다던 10대 시절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신성한 나의 몸은 다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자고 재촉한다. 이제 막 출발의 닻을 올리고 나선 돛단배에 나의 몸과 마음을 싣는다. 다시 모험을 시작할 때다.

죽산=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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