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할애 지나치게 많아 일반 기사도 배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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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뉴스가 현실을 구성한다는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뉴스가 전달하는 세계를 진짜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지난 한 주 신문을 통해 본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희망과 활기에 넘쳤다. 프랑스 골문을 여는 시원한 헤딩슛 장면이 월요일자 1면을 장식했고, 8강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는 제목까지 등장했다(5월 30일자 41면 베켄바워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인터뷰). 그렇게 신문에 그려진 희망찬 모습이 우리 사회의 현실일까?

일반적으로 신문엔 밝은 뉴스보다 어두운 뉴스가 많다. 사회의 문제점을 밝혀내고 대안을 제시하며 권력을 감시하는 일이 언론의 주요 임무이기 때문이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북한의 방송을 접하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 방송의 뉴스는 잘된 점과 훌륭한 일을 알리는 홍보성 내용이 많아 우리 언론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신문의 지면엔 어두운 내용의 기사가 너무 많아 밝은 뉴스를 좀 더 많이 다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긴 했지만, 지난주의 월드컵 관련 보도는 지나친 감이 있다. 월드컵 열기로 흥분된 사람들을 차분하게 진정시키고 세계의 축제를 손색없이 수행하기 위한 점검이 이뤄졌어야 했다. 텔레비전이 화려한 개막식 장면으로 축제의 열기를 전한다면 신문은 차분하게 월드컵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따져보고, 월드컵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월드컵 이후를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월드컵에 할애한 지면도 지나치게 많았다. 그야말로 '월드컵은 돈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메가 이벤트'라는 지적(27일자 14면 월드컵 이야기<5> 축구의 경제학)을 실감나게 했다. 27일자 아사히 신문에는 다섯 개의 스포츠면 중 월드컵 기사가 1개면밖에 없었다고 하는데(28일자 5면 '월드컵 열기 한국 후끈, 日 미지근'), 27일자 중앙일보에는 스포츠섹션 6개 면 중 5개 면이 월드컵 기사였고, 종합섹션에서도 4개 면(1,12,14,31)에서 월드컵 기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평소 같으면 신문에 실렸을 사회 각계의 다른 현안들은 지면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별다른 중요한 사안이 없었다면 다행이지만,그렇지 않았다면 하루 하루의 역사를 기록하는 신문의 중요한 임무를 방기한 셈이다.

그렇게 많은 지면에서 어린이나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10대들을 위해 대화체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설명해준 틴틴월드(28일자 14면)같이 쉽게 읽어보고 친해질 수 있는 기사가 아쉽다. 또 정작 시민들에게 필요한 차량 2부제 운행 관련 기사는 30일자 30면에 일단으로 처리했다. 이전에 보도를 했다 하더라도 실행에 임박해 그래픽을 곁들인 쉽고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 했고, 독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그동안 올림픽이나 월드컵 기간에 늘 지적됐던 것이 스포츠 영웅 중심의 보도 태도였다. 이번 기간에도 어김없이 그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가 1승도 못 거두고 16강 진출에 실패할 경우 언론의 히딩크 죽이기가 극에 달할 것'이라는 히딩크 시나리오(31일자 46면 '월드컵 네티즌')를 단순하게 웃어넘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승 후보나 16강 진출 가능성, 승리의 주인공 등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는 당연하지만, 스포츠는 한 명의 훌륭한 선수가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아니며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 기간 중 한 게임 한 게임의 결과에 냄비처럼 달아오르는 보도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언론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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