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돋보기] "아파트에 들어서면 퇴근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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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24일 퇴근 후 귀가하다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숨진 세무공무원 박모(당시 39세)씨의 유족이 "퇴근 도중 당한 사고이므로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적인 의미의 퇴근은 아파트의 경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끝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박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동(棟)의 2층 계단을 올라가다 쓰러졌으므로 퇴근 중의 사고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관세청에 근무하던 박씨는 지난해 2월 회사 동료와 함께 귀가하다 아파트 2층 계단에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언제까지가 퇴근인가'라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단독주택은 대문, 아파트 같은 집합건물의 경우는 아파트가 속한 건물(동)에 들어서기 전까지'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퇴근의 종료 시점과 관련된 첫 판결이다. 재판부는 "직장과 집 사이를 왕복하는 것이 출퇴근인 만큼, '집'이 시작되는 지점에 들어서면 퇴근이 끝난다고 보고 기준을 정했다"면서 "국내 판례가 없어 독일의 판례를 참조했다"고 설명했다.

만약 박씨가 회사원이었다면 아파트 건물 안에 들어서기 전에 넘어져 사망했다 하더라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없다. 회사원은 공무원과 달리 '출퇴근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는 경우'에만 산업재해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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