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검찰 개혁안 비판 문건 … 갈등 새 불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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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법원행정처 측이 지난달 검찰이 내놓은 자체 개혁안을 비난하는 내용의 문건을 만들어 한나라당 측에 제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련의 무죄 선고로 불편한 관계였던 법원과 검찰 사이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태가 커지자 대법원은 “판사가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것일 뿐 대법원 차원에서 만든 문건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검찰 기소대배심제 도입 의지 없다”=이 문건은 지난달 11일 대검이 발표한 검찰개혁안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개혁안에는 미국식 기소대배심제 도입, 감찰권 강화, 특임검사제 도입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문제의 문건은 검찰개혁안 발표 후인 지난달 15일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은 검찰이 도입하려 하는 ‘특임검사’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특임검사제는 검사의 비리가 발견되면 검찰총장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검사 비리를 강력하게 수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의 문건은 “특임검사를 검사 가운데서 임명하고 수사를 마친 뒤 다시 검찰로 돌아가기 때문에 인사권자의 의사에 따른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검사가 검사를 수사하기 때문에 결국 ‘제 식구 감싸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또 검찰개혁안의 핵심인 미국식 기소대배심제에 대해서도 “제안은 했지만 할 뜻이 없어 보인다”고 비난했다. 검찰이 기소대배심제를 도입하면서 법원의 국민참여재판을 재판 배심으로 전환하고 배심원 평결에 강제력을 부여하도록 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 이유는 헌법에 ‘국민들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27조)’가 있는데 배심원의 평결에 강제력을 부여하면 법관이 아닌 배심원에 의한 재판이 되므로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이 기소배심을 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헌법상 불가능한 법원의 배심제까지 끌고 들어갔다는 얘기다.

또 기소배심제 도입 이전에 한시적으로 운영할 검찰시민위원회 역시 검찰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할 가능성이 커 오히려 검찰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평가했다.

◆검찰 “설득력 없는 빈정거림”=이에 대해 검찰은 “법원의 문건은 논리나 설득력이 없고 검찰을 비난할 의도의 빈정거림만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대검 관계자는 기소배심제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 “배심원이 사실 판단에만 관여하고 법률 문제에 대한 심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합헌이라는 게 허영 교수 등 저명한 헌법학자들이 내린 결론”이라고 반박했다. “2004년 당시 위헌 논란이 일 때 이미 정리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법원이 재판 배심제를 도입하기 싫으니 되레 검찰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법원과 무관한 특임검사제를 걸고 넘어진 것에 대해선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한 검사장급 검사는 “법원이 다분히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문건을 만든 것도 문제지만 사법부가 정치인을 상대로 이런 일을 꾸민다는 것은 스캔들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문건을 만든 법관이 개인적으로 아는 한나라당 관계자의 부탁으로 즉석에서 만든 자료로 판사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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