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00배 즐기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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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혼자 생각이지만 살아있는 동안 한국에서 또 월드컵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역사적인 한·일 월드컵 개막일에 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더구나 역사의 현장에서 뉴스를 전달한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좋아하는 팀·선수 점 찍어야

막상 월드컵이 닥치고 보니 4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리옹에서, 마르세유에서 만났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전해온다.그때 혼자 느꼈던 열기를 이제 많은 한국인들이 함께 느낄 수 있으니 미안함(?)이 한결 덜어진다.

자, 이제 축제다. 축제를 즐기려면 제대로 즐기자. 한국 경기가 열릴 때면 꼭 한국이 지는 쪽에 내기를 거는 사람이 있다. 한국이 이겨도 좋고, 져도 좋기 때문이란다. '박쥐'같다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지만 나름대로 즐기는 노하우다. 월드컵을 제대로 즐기는 한가지 비법은 '월드컵에는 시시한 경기가 없다'는 사실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다. 슬로베니아-남아공전이나 우루과이-덴마크전이 시시하다고? 이들은 모두 치열한 지역 예선을 거친 유럽과 남미와 아프리카의 강호들이다. 네임 밸류에 속지 말고 실속을 차리자.

자기가 응원하는 팀과 선수를 미리 정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팀들의 경기를 보는 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이다. 조별로 '자기 팀'을 만들어 놓자.

단 한 경기라도 입장권을 구한 사람들은 정말 행운아다. 최고의 경기를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이다.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경기장 구경도 해보자. 축구전용구장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어보라. 전세계에서 몰려온 축구광들의 정열적인 응원을 지켜보자. 나라마다 응원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넥타이 매고 점잖게 앉아서 구경하겠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은 경기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보너스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했다고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즐거움은 도처에 널려 있다.

우선은 무턱대고 경기장을 찾아가자. 경기 시작 세시간 전에만 가면 경기장 안 못지 않은 열기를 밖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온갖 치장을 하고 여기저기 모여 소리소리 지르는 각국 응원단을 보기만 해도 짜릿한 흥분을 느낄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반바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젊은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젊어지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붉은 악마가 되고 싶다'면 광화문·한강변 등 도처에 마련돼 있는 멀티스크린을 찾아가자. 붉은 티셔츠가 없다면 흰 티셔츠에 빨간 색칠이라도 해보자.

그것도 아니라면 사무실에서, 또는 호프집이나 커피숍 등을 찾아가 함께 TV를 보면서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보자. (여기서 잠깐. '저 ×× 왜 저래''저런 ××' 등 욕을 해야만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은 집에서 혼자 보기 바란다. 자기는 스트레스가 팍팍 풀리겠지만 옆 사람들은 스트레스 팍팍 쌓인다)

구장밖 응원 열기도 체험을

그렇다면 "나는 그래도 월드컵이 싫어요"를 외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TV 채널 선택권을 돌려달라"고 목소리 높이지 말자. 어차피 떠나간 화살이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비디오 테이프를 한 10개쯤 빌려서 느긋하게 즐기면 어떨까. 아니면 책을 10권쯤 쌓아놓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보면 어떨지. 그것도 아니면 여행을 떠나보자. 10개 개최도시는 빼고 다른 곳을 찾는다면 아마 칙사대접을 받으면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축제는 시작됐다. 모두가 즐기는 윈-윈 게임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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