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전 : "JP가 한 게 뭐냐" "그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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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전은 충청 민심의 진원지다. 대전의 민심이 한 곳으로 쏠리기 시작하면 충청권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1995년 민자당에서 쫓겨난 JP(자민련 金鍾泌총재)가 화려하게 재기한 것도 대전에서 시작된 '녹색 돌풍'이 몇달 만에 충남북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전이 지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JP의 퇴조는 완연하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한나라당(弘喆후보)과 자민련(洪善基후보)의 접전이 치열한 대전시장 선거의 결과는 충청 민심의 향배를 점칠 수 있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예전만 못한 JP 위상

JP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은 금세 알 수 있었다. 2000년 총선 때만 해도 JP에 대해 '미워도 다시 한번'식의 반응들이 꽤 있었다. 이번엔 실망을 넘어 반감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충남 태안이 고향이라는 50대 택시기사는 29일 "JP가 도대체 한 게 없잖유. JP 때문에 충청도 사람들 이미지만 '이랬다 저랬다'로 나빠지고 있슈"라며 손을 내저었다. 대전역 앞 중앙시장에서 잡화상을 하는 모(58)씨는 "김종필씨가 진작 후진을 키워냈어야 하는데 혼자 끝까지 하려다 이 지경이 된 거여"라고 혀를 찼다. 건설업체 사장 모(44)씨도 "JP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한명도 없는데 자민련이 시장선거를 이기더라도 지금 이대로는 갈 수 없을 거다"고 했다.

그러나 JP와는 별개로 '충청권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심리는 존재했다. 유성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 丁모(39)씨는 "영남사람 호남사람 다 뭉친다는데 우리라고 왜 그런 생각이 없남유"라고 했다.자민련이 대전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이런 밑바닥 정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민련이 그동안 시장·구청장·시의회를 휩쓸면서 심어놓은 조직세도 상당하다고 했다. 자민련은 27일자 대전 지역신문 각 1면에 '내 고향은 충청도입니다'는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충청권 대변은 한나라당이"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이회창(會昌·예산)대통령후보·서청원(徐淸源·천안)대표·강창희(姜昌熙·대전)최고위원·김용환(金煥·보령)국가혁신위원장 등 당서열 1~4위가 전부 충청권 출신이란 점을 유권자들에게 집중 홍보하고 있다. 대전지역 언론인 S씨도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뒤 그같은 얘기가 오피니언 리더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아직 이회창 후보가 충청도 사람이란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30일 택시기사 모(53)씨는 "예산에서야 어떨지 모르지만 대전에서야 누가 이회창씨를 고장사람으로 생각하것슈"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번 민주당 경선 때 이인제(仁濟)의원 얘기가 많이 나왔다가 지금은 쑥 들어갔네유"라며 아쉬워했다.

현지에서 김대중(金大中)정부에 대한 불만·불신은 매우 높았다. 자민련측 선거컨설팅을 맡고 있는 현지 여론조사기관 'C&S'의 대표 심상협(相夾)씨는 "최근 한나라당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는 것은 대통령 아들들 비리 때문인데 이건 '외생변수'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박병석(朴炳錫)의원의 대전시지부장 사퇴나 대전지역 시민단체들이 민주당-자민련 공조에 대해 "나눠먹기식 담합"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영향인 듯했다.

◇민-자 공조 먹힐지가 변수

그래서 자민련은 어떻게든 시장 선거전을 중앙정치 이슈가 아닌 인물·정책 대결로 이끈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자민련 홍선기 후보의 홍보물엔 'JP'나 '김종필'이란 단어를 찾아 보기 어렵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어느 당 후보인지도 쉽게 알 수 없을 정도다. 반면 한나라당 염홍철 후보의 홍보물엔 "곧 없어질 정당엔 '이제 그만'"이란 큰 제목 밑에 "한나라당은 자민련을 대신해 충청인의 권익을 앞장서 대변할 유일 정당"이란 글이 있다. 이회창 후보의 사진도 큼지막하다.

민주당이 자민련과의 공조를 이유로 시장 공천을 안주자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하용(鄭夏容)씨에 대한 여론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변수다.

대전=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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