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제2부 薔薇戰爭 제4장 捲土重來 : 남이 뱉은 침은 닦지 않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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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단숨에 무주를 정복한 김양은 내친김에 남원(南原)을 공격하였다.

남원은 원래 백제 때의 고룡군(高龍郡)으로 당나라의 고종이 소정방(蘇定方)을 파견하여 백제를 멸하였을 때 유인궤(劉仁軌)가 자서로 머물고 있었던 곳이었으나 그 해 문무대왕이 이를 합병하였고 신문왕(神文王)때에 소경(小京)이 되었던 요충지대였다. 남원을 정복하지 않고는 무주와 청해진은 연결될 수 없었으며, 또한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남원에는 김윤장(金允長)이라는 태수가 부임하고 있었는데, 그는 김양의 사촌이었던 김흔의 후임이었다. 성격이 강직하였던 김윤장은 비록 군사가 열세였으나 죽기를 각오하고 김양의 군사와 맞서 싸웠다.

남원의 성읍은 석축으로 쌓았는데, 불과 오백여명의 지방군이 파수하고 있었다. 김윤장은 급히 사자를 보내어 원군을 보내주도록 요청하는 한편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싸웠으나 김양의 군사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김윤장의 군사는 정년이 이끄는 군사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정년이 이끄는 군사는 기병(騎兵)으로 출병하였다 하면 거칠 것이 없었다. 정년은 항상 선두에 섰으며, 두목의 표현대로 '말을 타고 창을 쓰는데 감히 대적할 자가 없는'천하무적이었다. 정년이 앞장 서면 대나무가 쪼개지듯 적군이 쓰러지고 길이 뚫렸다. 이를 본 김양이 감탄하여 말하였다.

"참으로 그대야말로 두예(杜預)요. 그대야말로 파죽지세인 것이오."

파죽지세(破竹之勢).

진나라의 무제 때 대장군이었던 두예는 오나라를 정벌하고 삼국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명장인데, 그는 "지금 당장은 오나라를 치기 어렵습니다. 잦은 봄비와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철군하였다가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고 여러 장수들이 말하자 "그건 안될 말이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요.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하고 곧바로 전군을 휘몰아 단숨에 오나라를 공격하여 천하를 통일하였던 영웅이었던 것이다.

'대나무를 쪼개듯 적을 격파한다'는 파죽지세란 말은 바로 두예의 맹렬한 공격에서 비롯된 말. 정년이야말로 전설적인 영웅, 두예를 능가하는 무예를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내 남원성은 이틀만에 정복되고 태수 김윤장은 지리산 속으로 숨어들어 갔다가 군사들에게 잡혀왔는데, 김양은 포박되어 끌려오는 김윤장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몸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면서 말하였다.

"우리가 적이 되어 싸운 것은 모두 괴수 때문이지, 우리들의 사사로운 원한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대에게 무슨 원한이 있겠는가."

김양이 풀어주려 하였으나 김윤장은 김양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였다.

"내 일찍이 네놈의 피 속에 반적 김헌창의 피가 흐르고 있어 반골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만 그대가 어찌 감히 나를 문책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를 본 정년이 김양의 얼굴에 묻은 가래침을 닦아주려 하였다. 그러나 김양은 이를 물리치고 말하였다.

"내버려두어라. 얼굴에 묻은 침을 닦으면 그대의 뜻을 내가 거스르는 것. 그대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김양이 묻자 김윤장이 대답하였다.

"적의 칼에 피를 묻혀 죽고 싶지 않으니, 내 스스로의 손으로 자진하여 죽을 수 있도록 이를 허락하시오."

여러 장수들이 칼로 베어 죽이려 하였으나 김양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김윤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로 스스로 가슴을 찔러 죽었는데, 그의 숨이 끊어지자 김양은 성대하게 예를 올려 장례를 치러주도록 하는 한편 김윤장이 뱉은 가래침이 얼굴에서 저절로 마를 때까지 이를 닦지 않고 있었다.

"어찌하여 침을 닦지 않으셨습니까."

정년이 묻자 김양은 대답하였다.

"남이 뱉은 침은 닦는 법이 아니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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