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후끈 월드컵 열기 日 미지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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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월드컵 개막을 목전에 두고 2002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다. 한국에선 월드컵 열기가 급속히 달아오르고 있는 반면 일본에선 오히려 가라앉고 있다.

◇한국=한국 축구대표팀이 잉글랜드·프랑스 등 유럽의 강호를 맞아 잇따라 선전하면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거리가 한산해지고 관련 업종의 매출이 증가할 정도다. 광화문과 중랑천 등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수천명의 팬들이 몰려 함께 응원을 펼치는 것은 이제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잠실과 인천 문학 야구장에서는 26일 프로야구 경기가 끝난 뒤 수천명의 관중이 자리를 뜨지 않고 대형 전광판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의 평가전을 시청했다.

잠실 야구장 측은 특히 월드컵 기간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야구경기를 하지 않지만 운동장을 무료 개방, 대형 전광판을 통해 한국전을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업종간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26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효창 골프연습장에는 전체 44개 타석 중 손님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5개에 불과했다. 평소 휴일이면 대기표를 발급해야 할 정도였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주택가의 치킨·호프집 등은 월드컵 특수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TV가 설치돼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K호프집은 26일 매출이 평소보다 30% 가량 늘어났다. 金모 사장은 "휴일에는 손님이 뜸한 편인데 이날은 축구 경기를 시청한 뒤 밤 늦게까지 축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형 TV를 설치하는 주점·음식점도 늘고 있다.

◇일본=좀처럼 월드컵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일본 대표팀의 부진이다. 일본은 최근 네경기에서 2무2패를 기록, 한번도 시원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25일 월드컵 출정식을 겸해 열린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도 고전 끝에 1-1로 비겼다. 그것도 상대 자책골로 한 점을 얻은 것이다.

일본은 다카하라·니시자와 등 유능한 공격수들이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득점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테크닉이 뛰어난 나카무라 순스케를 탈락시킨 필립 트루시에 감독의 선수 선발에 대해서도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럽 강호 이탈리아와도 1-1로 비기는 등 잘 나가던 '트루시에 일본'에 대한 믿음이 불안과 의혹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의 심장부인 수도 도쿄(東京)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도 한 원인이다.

도쿄와 인접한 요코하마와 사이타마에서 경기가 있긴 하지만 도쿄에서는 월드컵 깃발이나 환영 플래카드조차 보기 힘들 정도다. 언제 월드컵이 개막하는지, 일본이 무슨 조에 속했는지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손을 내젓는 사람이 많다.

월드컵 개최도시나 참가국 트레이닝캠프를 유치한 곳에서는 연습 경기에 사람들이 몰리는 등 분위기가 꽤 고조돼 있다. 그러나 이것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카메룬처럼 약속을 어기고 늦게 도착한 팀이 있고, 전력 노출을 우려해 훈련도 대부분 비공개로 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반응도 신통찮다. 밤 시간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려도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을 보기가 쉽지 않다. 월드컵 공식 신문인 아사히신문 27일자에는 다섯개 스포츠면 중 월드컵 기사는 1개 면(7단광고)밖에 없었다.

도쿄=정영재 기자,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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