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대 교수·학생 400명의 '열린 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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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여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멎는 곳에 모든 인류는 형제가 된다…."

지난 2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KNUA) 음악원 4층 합주실. 이건용 KNUA 총장을 비롯, 고려대.한국외국어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개 대학에서 온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2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KNUA 음악원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무대에 오르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 합창단으로 출연하기 위해서다. 4개 대학 교수.교직원.학생 400여명이 화합의 하모니를 펼치는 뜻깊은 무대다.

KNUA에서 합창을 강의하는 김진수씨의 지휘에 맞춰 머리가 희끗해진 교수들이 오랜만에 고교 음악 수업으로 되돌아간 듯 제자들과 함께 젊은 기분을 만끽했다. 이날 연습에 앨토를 맡아 참석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KNUA 음악원장)교수는 "음표만 있는 악보만 연주하다 노래를 부르려니 발음이 잘 안 된다"며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합창 교향곡'을 연주할 연합 합창단 중에는 KNUA 교수.학생들이 280명으로 가장 많고 고려대.한국외국어대.KAIST에선 30여명씩 참가했다. 이날 연습에 모습을 드러낸 안문석 고려대 부총장, 정일용 한국외국어대 부총장, 김진성 고려대 총무처장, 김현택 한국외국어대 대외협력처장, 김봉렬 KNUA 교학처장 외에도 안병만 한국외국어대 총장, 유진 KAIST 전 부총장, 황지우 KNUA 연극원장 등도 합창단으로 출연한다. 합창단원으로 참가하는 교수들은 대부분 음역이 낮은 앨토나 베이스를 맡았다.

이들 네 대학이 함께 '합창'을 연주하기로 한 것은 지난 10월. 원래 KNUA 오케스트라의 단독 공연이었으나 연말에 열리는 공연이니 만큼 뜻깊은 일을 꾸며보자고 머리를 맞대던 중 최근 교류협정을 맺은 이웃 학교의 교수.학생들과 함께 '우정의 무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현재 학교별로 모여 매주 3~4회씩 연습 중이며 연습을 위한 악보나 지휘자.반주자는 KNUA에서 제공한다. 26~28일 예술의전당 음악당 리허설룸에서 오케스트라 반주로 전체 총연습을 할 예정이다.

공연 수익금 전액은 소년소녀가장 돕기 기금으로 사용된다. KNUA 강북 캠퍼스와 고려대.한국외국어대.KAIST 인근에 사는 성북구.동대문구 주민들도 무료로 초청했다. 따라서 이번 공연은 대학과 대학, 전공자와 아마추어, 교수와 학생, 대학과 지역 사회가 함께하는 '만남의 자리'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연극원.미술원.영상원.전통예술원 캠퍼스를 두고 있는 KNUA는 고려대.한국외국어대와는 지난해, KAIST와는 올해에 학생.학점.교수 교류 협정을 했다. 한 학기에 40~50명이 캠퍼스를 넘나들면서 강의를 듣는다. 예술 관련 과목은 KNUA에서 인문 교양과목은 나머지 3개 대학에서 듣는 식이다. KNUA 오케스트라나 극단의 캠퍼스 방문 공연이 잦아지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이건용 KNUA 총장은 "처음엔 서로 주눅 들기도 하고 쑥스러워했지만 앞으로 매년 함께 연주하고 싶다는 교수.학생들이 많아졌다"며 "음악을 통한 사회봉사와 화합이야말로'합창 교향곡'의 근본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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