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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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랑스러운 경기였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보여준 선전(善戰)에 우리도 놀랐고, 세계도 놀랐다. 국민의 관심과 열기는 한껏 고조돼 사흘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드높다.

이로써 1996년 5월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6년에 걸친 준비작업이 마무리됐다. 그동안 정부와 월드컵조직위원회는 2조원을 들여 경기장 10개를 새로 짓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두 차례 정권 교체까지 겹쳤던 준비 과정의 난이도는 88년 서울올림픽 못지 않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일이다. 경기는 물론이요, 경기 외적인 면에서도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을 거둬야 한다. 프랑스전은 그런 가능성을 생생하게 보여준 한판이었다. 8강 진출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한국팀의 경기력은 국민의 기대 수준을 너무 높여 놓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을 정도로 향상됐다. 경기 운영이나 관전 질서도 사소한 허점 외에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특히 주차·경기장 안내에서부터 청소까지 거드는 자원봉사자들의 높은 참여 의식이 든든한 자산이다. 다만 가짜 외국인 기자에게 잘못 발급된 출입증이나 김포공항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지뢰 뇌관 등은 안전 관리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월드컵의 첫째 우선순위가 안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개막 사흘 전에도 한국전 티켓이 남아돌고 외국인 입국자가 예상을 밑도는 등 판매 관리나 대외 홍보에서 드러난 시행착오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월드컵을 각종 게이트로 상징되는 부패구조와 정쟁, 지역감정 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결집된 국민적 열기를 이어간다면 가능성은 있다. 정치권과 검찰은 월드컵의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양대 선거와 비리 수사를 깨끗이 마무리할 책무가 있다. 그래야 월드컵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용과 위상이 도약하는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난 6년간 외환 위기와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으면서도 아끼지 않았던 월드컵 투자의 기대 효과를 대회 한달로 끝낼 수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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