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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사립화'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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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 조사실이 투명하게 바뀌고 있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남부.인천.수원지검 등 4개 지검이 엊그제 새로운 개념의 조사실 및 검사 신문실, 아동.여성 전용 조사실을 마련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대검은 이를 전국 검찰에 확대해 나가겠다는 방침이어서 수사 관행의 전면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조사실의 투명화는 무엇보다 피의자의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사건의 성격과 조사받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세 가지 유형의 조사실을 설치했을 뿐 아니라 녹음.녹화 장비와 함께 조사실 외부에서 조사 과정을 모니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 검사 신문실을 법정 구조와 비슷하게 만들어 피의자 옆에 변호인이 앉을 수 있게 한 것도 피의자 인권 보호는 물론 조사의 신뢰도를 높일 중요한 변화다.

특히 성범죄 등의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전용 조사실을 마련한 것 역시 평가할 만하다.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할 경우 수사기관에서 신원 확인 등을 위해 피해자와 대면시킴으로써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초동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자 앞에다 용의자 40여명을 한 줄로 세워놓고 가해자를 가려내도록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동.여성 전용 조사실에는 밖에서만 안쪽을 볼 수 있는 편면경이 설치돼 피해자가 피의자와 대면하지 않고도 신원 등의 확인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대법원은 얼마 전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할 경우 검사가 작성한 조서의 증거 능력을 제한하는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조사실 '리모델링' 작업은 오래전부터 추진돼온 것이지만 대법원의 판례 변경으로 더욱 속도를 낼 수밖에 없게 됐다. 더구나 법원과 검찰 일부에선 정치인들의 뇌물이나 정치자금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따라서 검찰은 조사실 리모델링을 인권 수사와 조서의 증거능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시스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