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행하는 붉은 소파와 사람들의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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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호르스트 바커바르트가 미국 뉴욕 소호에 있는 한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발견한 낡은 붉은 소파와 함께 30년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하면 만났던 사람들의 사진과 인터뷰를 모은 책 ‘세상에 말을 건네다’ 붉은 소파를 소개한다.

여기 세상을 여행하는 소파가 있다
1979년 뉴욕의 소호거리, 한 조각가의 작업실에 있던 낡은 소파는 호르스트 바커바르트라는 젊은 사진가를 만난다. 그 소파가 마음에 든 사진가는 곧 버려질 소파를 소호거리 한 복판에 있는 어느 백화점 앞으로 옮긴다. 그리고 지나던 사람들을 앉히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파는 거실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고, 사진가와 소파의 긴 여행은 시작되었다.

세계인의 광장이 된 붉은 소파
이후, 30년간 소파와 작가는 전 세계를 여행했다. 캘리포니아 대저택에서 미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미소 짓고 있는 휴 헤프너도 만났고, 모스크바의 혁명 기념관 공사 현장에서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르바초프도 만났으며, 노르망디의 한 농장에서 자신이 키운 사과더미에 앉아 카리스마를 내뿜는 무명의 농부도 만났다.

이 책에는 30년간 세계를 돌아다닌 소파와 소파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유럽에서 만난 여든두명에게 소파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당신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 당신에게 불행이란 무엇인가? /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 당신의 가장 큰 바람은 무엇인가? / 당신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 당신은 누가, 혹은 무엇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가? / 당신은 사후세계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가? / 당신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

소파에 앉았던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배경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소파에 앉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이상적으로 비춰진다.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함도, 100살을 바라보는 노인의 나치에게 핍박 받았던 모진 인생도, 보는 사람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소파의 여행은 계속된다
붉은 소파의 여행은 사람들을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내가 30년간 이 무거운 소파와 함께 세상을 여행한 이유는 지구촌 모든 이들의 독특한 존재성과 완전한 평등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사진 속 인물들은 국가, 인종, 직업을 초월해 붉은 소파 위에서 눈부시게 아름답고 당당해 보인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오늘도 붉은 소파는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다.

(중앙북스. 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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