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新밀월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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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과 러시아가 '신(新)밀월시대'로 접어들었다.

양국은 핵무기 감축협상으로 밀월의 방향을 잡은 데 이어 이번 정상회담에서 에너지 안보분야에서도 중요한 협력의 전기를 마련키로 해 '핵·에너지' 두 축에서 전략적 우호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2~28일의 유럽순방 일정 대부분을 러시아에 할애한 것은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에너지안보 상호의지"=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7일자 최신호에서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방문(23~26일)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최근 합의한 전략핵무기 감축조약에 서명하는 외에 에너지안보협정도 체결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협정의 골자는 석유위기가 발생하면 러시아가 미국 등 서구에 부족분을 공급해주는 대신 미국은 러시아내 석유자원 개발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 양국은 강대국의 이권경쟁과 종족갈등 등 불안정에 시달려 온 중앙 아시아와 카스피해(海)에서 갈등을 청산하고 지역안보 및 자원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은 '숙원'중 하나인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를 낮출 수 있게 됐으며 향후 '석유 무기화'사태가 벌어져도 '러시아카드'를 활용해 협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러시아 역시 경제회생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석유수출의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재원을 자원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중앙아시아 안보의 짐도 미국과 나눠질 수 있게 됐으며 개발이익도 챙길 수 있게 됐다.

미국의 한 고위 외교소식통은 "러시아와의 협력은 미국의 거대한 전략적 이익에 속한다"며 "중앙아시아의 안보 증진과 급진이데올로기 추방은 미·러의 윈윈전략"이라고 말했다.

◇미·러 신밀월 체제="이번 부시 대통령의 독일·프랑스·이탈리아 4개국 유럽순방의 포인트는 러시아"라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나머지 3개국은 사실상 부시와 푸틴의 밀월에 들러리를 섰다는 분석이다.

이번 러시아 방문 중 부시 대통령은 핵감축조약 조인식과 같은 공식행사 외에 두 정상의 개인적 친밀감을 과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난해 푸틴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텍사스주 크로퍼드목장에서 정담(情談)을 나눴듯 이번엔 부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해 정상 부부가 함께 차를 마시며 환담하는 행사도 갖는다. 양국 정상 부부는 박물관 관람도 함께 한다.

뉴스위크는 "두 정상은 서로 영혼의 깊은 곳까지 털어놓는 사이"라며 "정상들이 서로 애칭을 부를 정도로 양국 관계는 초기의 불신에서 1백80도 달라졌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28일 로마에서 '나토·러시아위원회' 창설 서명식에 참석하며 대테러전쟁과 안보협력을 주제로 한차례 더 '확대정상회담'도 한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독일에선 채 24시간도 머무르지 않고 프랑스에서는 노르망디상륙작전 58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 주된 일정이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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