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은 공인된 로비자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타이거풀스가 각당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사실이 확인되면서 국회의원 후원금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용호·진승현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졌다 하면 항상 의원 연루설이 나왔다. 시민단체나 학계에서는 정치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후원금 입출금 내역을 공개해 외부에서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인된 로비자금="상임위원회 관련 기업들이 소속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내면 부담없이 받는다.1천만원을 넘는 경우는 드물다. 정권 초기에는 금액이 컸지만 16대 들어와서는 작아졌다."(재경위 소속 의원 보좌관 Y씨)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2백만~3백만원 정도씩 후원금이라고 낸다."(민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 K씨)

이들은 후원금 형태로 들어오는 돈이 로비자금인지를 따지기 전에 영수증만 써주면 법에 저촉될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후원금을 받고나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며 로비 효과를 시인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의원들은 법이 정한 한도(개인 2천만원·법인 5천만원)내에서 돈을 받고 영수증만 써주면 그만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얼마를 받았고, 어디에 썼는지를 신고하는 절차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공개되지도 않는다. 정치자금법은 누구에게 돈을 받았는지 밝히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법의 허점이 정치자금을 가장한 로비자금이 오가는 일을 부추기고 있다.

◇끊이지 않는 잡음=구린 돈을 정치자금으로 받아 구설에 오른 의원들이 후원금으로 받았다고 해명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예로 민주당의 김봉호(金琫鎬)·조홍규(趙洪奎)전 의원, 박병윤(朴炳潤)의원 등이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각각 1천만~5천만원의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후원금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朴의원 보좌관은 "씨는 朴의원과 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에서 만나 서로 친분이 있었고 2천만원에 대한 영수증 처리도 했다"면서 대가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타이거풀스측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동채(鄭東采)의원 등도 "의례적인 것이고 영수증도 써줬다"고 말했다.

돈을 받았다가 누락시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다.민주당 김방림(金芳林)의원은 2000년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 검찰수사 무마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현재 검찰에서 조사 중이다. 현재 구속 중인 김운환 전 의원은 1995년 청구그룹의 장수홍 회장에게서 2억원을 받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대안은=누가 후원금을 얼마나 냈고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공개하는 것이 시급하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김민영 국장은 "후원자의 신원과 정치자금의 입출금 내역을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면서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1만원·5만원·10만원·50만원·1백만원 등 다섯종류로 발행되고 있는 무기명 영수증제(일명 쿠폰제)도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현재와 같이 개인·법인으로 상한선을 정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어떤 기업의 사장이 법인명의로 내고 자기 명의나 주변사람들 명의로 내면 5천만원이 아니라 억원대의 후원금을 내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초선 K의원은 "로비를 하려는 기업이나 개인이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면서 "정치자금을 소액·다액으로 거둘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정치자금 상한선을 정하지 않고, 금액과 제공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송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