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 시작되는 아프간 철군 일정 “실패로 가는 메커니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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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내년 7월 시작될 예정인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실패로 가는 메커니즘을 제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프간 현실에 맞지 않는 성급한 철군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9일 보도된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올해 87세인 키신저는 1970년대 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후임 미 대통령들에게도 비공식 고문으로 활동하며 미국의 대외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웨스트포인트 연설에서 아프간 파견 미군 3만 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내년 7월을 철군 시작 시점으로 못 박았다.

키신저는 “미국의 아프간 목표가 지나치게 거창한 데다 수도 카불 이외의 아프간에는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 시점과 아프간 전략의 도출 방식을 현실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프간 반군을 무찔러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미국의 아프간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키신저는 “철군 시점을 밝히는 것은 적들에게 어떻게 전투를 치러야 하는지 알게 하고, 느긋하게 기다릴 수도 있게 해 현명하지 않은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군사 전략에 마감시간을 설정할 경우 적들에게 패를 노출시켜 아군의 입지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아프간 정부군에 안보 책임을 맡기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예정된 기간 내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아프간 전략을 구상할 때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리기보다는 새 아프간 사령관으로 지명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중부군사령관과 조용히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현재의 아프간 전략을 고수할 경우 미국의 외교와 군사 부문이 따로 놀 수 있다고 키신저는 경고했다. 그는 “(탈레반 축출 등) 아프간 전쟁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이 장기적으로 전쟁을 치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이 점을 분명히 하는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파병 미군을 3만 명 더 늘리고 스탠리 매크리스털을 아프간 사령관에서 해임한 것은 제대로 된 결정”이라고 두둔했다.

아프간 철군 시점은 미 정계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 공화당은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의 상원 인준 청문회를 앞두고 아프간 철군 시점이 적절한지를 집중적으로 따질 방침이다. 반면 민주당은 청문회에서 미군 철군에 대비해 아프간군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할 예정이다.

미 행정부 내에서도 아프간 철군 시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오바마는 최근에는 철군 시점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반면 조 바이든 부통령과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은 예정된 대로 철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매크리스털이 ‘롤링 스톤’ 최신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아프간전 수행 방식을 비판하면서 미국의 아프간 전략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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