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6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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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하여튼 맏딸이 밥은 지어 놓았고 주안댁이 들고온 생선으로 찌개를 끓였다. 온 식구가 어깨를 비비며 둘러앉아 비좁은 밥상 가운데에 생선찌개를 냄비째 덜렁 얹어놓고 배춧잎이 시퍼런 풋김치에 밥을 먹었다. 벽에 걸린 남폿불이 제법 훤했지만 그을음 냄새가 고약했다. 주안댁이 남편에게 불평을 했다.

- 심지를 좀 자르라니까, 계속 타고 있잖아.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마와 목 언저리가 온통 땀에 젖었다. 툭툭 아무렇게나 길게 잘라낸 푸른 배춧잎 김치를 주안댁이 맨손으로 죽죽 찢어 놓으면 아이들이 제각기 밥숟갈 위에다 사리를 틀어 얹어서는 입을 마음껏 벌려 단숨에 집어넣었다. 벌건 고춧가루로 덮인 생선찌개는 한입만 먹어도 입안이 얼얼했다.

온 식구가 비좁은 방에서 함께 일열로 누워서 잤는데 곧 아저씨와 아줌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벽 쪽에 아들과 붙어서 잤는데 그 녀석이 가끔씩 팔을 내 머리에 얹거나 다리를 배 위에 올려놓기도 해서 잠들었다가는 자주 깨어났다. 난생 처음으로 남의 집에서 낯선 식구들과 함께 자면서 우리 집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나는 이 너른 세상에서 언제나 혼자일 것이었다.

이튿날 주안댁은 나를 데리고 역에 가서 함께 표를 끊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우리 식구들 얘기를 했고 주안댁은 한숨을 쉬었다.

- 에그 이런 철딱서니야. 느이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시겄냐. 간밤엔 아마 한숨도 못 주무셨을 게다.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짧고 빠른지 언뜻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등포 역이었다. 그때부터 가슴이 뛰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낯익은 거리가 좋아 보였지만 내가 없는 동안에 그 어디나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게 어쩐지 서운했다.

어머니는 그날 큰소리 한번 내질 않았다. 대신에 주안댁과 함께 나가서 점심을 잘 대접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오늘 좋은 사람 만났다'고만 말했다. 어머니는 나중에 아버지와 함께 인천에도 다녀오게 된다. 그 뒤 봄마다 굴비 말리는 철이 오면 주안댁이 서해안 조기를 상자째로 떼어다 주곤 했다. 어머니가 내게 내린 벌은 단 한가지였다. 집에서 나갔다가 돌아올 때까지의 일들을 하나도 빼먹지 말고 글로 써내라는 것이었다.

성적이 자꾸만 떨어졌다. 어머니는 오학년 일학기말 시험 때가 다가오자 아예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가 밖에 나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 그런대로 시험은 치렀지만 역시 산수가 엉망이었다. 지난해에 춘천 나들이가 길어지면서 기초 다지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머니도 알면서 '이제 방학은 없다'는 식으로 엄포를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큰누나에게 동생의 산수 과외를 해주도록 일렀다. 어머니와 큰누나가 교대로 내 옆에 붙어앉아 교과서와 학습지를 펼쳐 가르치고 시험을 보았다. 가끔 지루해서 졸거나 한눈을 팔면 사정없이 매를 때렸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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