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유현희양 집 9남매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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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홉 남매가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사는 게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서, 아이들이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지난 15일 오후 화순군 동면 언동마을.

박점순(39)씨 집을 안내하던 이 마을 출신 신정희(45.한국야쿠르트 광주 충장직매소)씨는 연방 혀를 찼다.

작은 골짜기를 가로막고 있어 큰 비가 오면 온전치 못할 것 같은 대지 30여평.연건평 10평 남짓의 허름한 집.

마당에 친 4개의 줄에는 많은 식구 수를 보여 주듯 어른 것부터 아기 것까지 빨래가 가득 널려 있었다.

주방을 겸한 큰방과 작은방 안은 옷가지.이불.가재도구 등이 발을 들여 놓을 틈이 없을 만큼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은 많고 어머니 박씨는 건강하지 못해 얘들 단속은 물론 청소조차 제대로 못하니 집안이 엉망인 게 당연하다.

박씨는 남의 농사를 지어 가족을 먹여 살리던 남편(유기동.53)이 지난 3월 폐렴으로 숨진 뒤 혼자서 2남7녀를 기르고 있다.

19살 현희, 17살 연경, 15살 은정, 12살 은선, 9살 광식, 7살 은혜, 6살 광식, 4살 은지, 3살 은희.

맏딸마저 건강이 좋지 않아 이제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어머니 대신 동생들을 보살피지도 못하고 있다.

열 식구의 생계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월 84만원으로 겨우 꾸려 가고 있다.

때문에 아이들의 행색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옷과 신발은 헤졌는가 하면 머리들은 오래 깎지 않아 덥수룩하다. 목욕탕에 가 본 적도 없는 아이도 있다.

충치로 이가 검게 썩어 들어가는 등 몸에 이상이 생겨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코흘리개 막내를 비롯한 어린 아이들은 양말 하나 신지 못하고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한 마을 주민은 "동네에서 아이들을 사회복지시설에 보내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으나 어머니와 생이별을 시킬 수는 없었다"고 귀띔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열악한 여건에서 자라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모두 비뚤어지지 않고 해맑다는 점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광민.광식군과 은혜양은 "커서 화가가 되겠다"며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자랑하곤 한다.

고교 2학년인 둘째 딸 연경양은 "간식 같은 것을 못 먹다 보니, 점심은 모두 학교나 유아원에서 먹는데도 쌀이 한 달에 한 가마로도 모자란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인 유기종(54)씨는 "곁에서 지켜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며 "돈을 버는 사람은 없고 식구는 열이나 되는 바람에 끼니 걱정까지 해야 할 판국"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맏딸의 담임교사인 국순옥씨는 "가정 방문을 갔다가 깜짝 놀랐고, '아직도 이렇게 사는 아이들도 있구나' '가난이란 게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씨는 "어머니와 아이들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라서 누군가 부모처럼 돌봐 주는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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