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이 눈뜬 生老病死의 불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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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불교는 이제 청바지를 입은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근사한 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이같은 일이 전개되고 있다고 신간 『청바지를 입은 부처』를 편집한 수미 런던은 말한다.

『청바지를 입은 부처』는 불교에 귀의(歸依)한 미국 젊은이 28명의 체험담을 모은 책이다. 신앙 간증록이자 불교 수행기인 이 책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서술의 주체가 미국인이란 점에서 문명이 갈등하고 융합하는 현상의 개인적 기록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미국인이라고 해서 불교를 접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우리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하거나, 혹은 큰 병에 걸릴 때 불교에 입문하게 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마약에 중독돼 인생이 찌들었던 경험을 불교 수행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우리에겐 드문 경우다. 병들고 죽는 삶의 한계점을 체험하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나는 누구인가"라는 보편의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불교를 통해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불교일까.그것은 "30년 전엔 급진적이라거나 반문화(反文化)적이라고 간주되던 동양의 모든 것들이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엮은이의 지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어려서 교회에 다니며 가졌던 의문과 불만들에 대한 대안으로 불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로 박물관에서 티베트 승려들이 그린 만다라를 보거나, 독경(讀經)CD를 듣거나, 불상을 구입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는다.

불교와 일상 생활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라고 고민하는 대목에서는 불교 가치관의 세계화를 발견하게 된다. 서구화로 치달아온 우리가 미국 젊은이들의 고민을 통해 불교가 더이상 동양만의 종교가 아님을 확인하게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불교가 언론과 광고 등에서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선정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불교는 언제 접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교를 접한 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대목은 오히려 동양인을 숙연케 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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