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바이스코프(1908~200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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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요즘 상당수의 청소년들은 물리학이 딱딱하고 어려우며, 차갑고 감정이 결여된 학문이라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물리학도 하이든의 교항악과 마찬가지로 놀라운 감흥을 줄 수 있다. 지난 4월 21일 타계한 빅토르 바이스코프는 과학과 감성을 결합시키고 난해한 양자역학을 베토벤의 소나타에 비유해 설명한 20세기 이론물리학의 거장이었다.

음악과 학문의 고장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바이스코프는 1934년 취리히 대학에서 볼프강 파울리의 조교가 되어 그와 함께 회전이 0이면서 전기를 띤 입자를 예언하는 양자전기역학을 발전시켰다. 당시 파울리는 바이스코프에게 전자의 자기 에너지에 관한 문제를 줬는데, 바이스코프는 간단한 계산을 잘못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논문이 출판된 직후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오펜하이머와 일하던 퍼리라는 과학자가 그의 논문에 들어 있는 아주 멍청한 수학적 실수, 즉 중학교 수학 시험에나 나올 수준의 계산 실수를 지적했던 것이다. 이를 고치자 의미 없던 논문은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논문으로 탈바꿈했다. 바이스코프는 이렇게 엄밀한 계산에는 좀 서툴렀지만 물리적 추론에는 아주 뛰어난 과학자였다.

바이스코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맨해튼 계획'에 참여해 원자탄을 개발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원자탄이 투하된 뒤로는 과학자로서 책임을 느끼고 아인슈타인과 함께 평화운동을 전개했다. 냉전 기간 내내 과학의 군사화를 반대하는 데도 앞장섰다. 전문적 연구뿐만 아니라 과학저술가로서도 탁월한 명성을 날렸으며, 교황에게 양자역학을 쉽게 가르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중을 위한 과학저술에서 바이스코프는 음악의 고장 출신답게 양자역학에서 주장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베토벤 소나타와 연결해서 설명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상호 대립적인 것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베토벤 소나타는 공기의 진동을 거친 뒤 뇌 청각 신경에 의해 알아듣는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작용은 베토벤의 소나타가 특정한 정신 상태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보완적이다. 저녁 노을도 물리적으로는 그저 빛의 산란 현상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황혼 속에서 놀라운 감흥을 느낀다. 이런 관계를 서로 보완적이라고 한다. 바이스코프는 과학도 베토벤의 음악이 아름다운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만약 과학적 진리와 감성적 진리, 이 둘 가운데 우리가 어느 하나에만 매몰된다면 삶의 중요한 여러 측면을 놓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과학에서 잃어버린 반쪽인 감성을 되찾는다면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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