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축구 더 국제화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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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본 축구대표팀 필립 트루시에 감독의 어시스턴트 겸 통역 플로랑 다바디(28)는 일본 내에서 트루시에 감독만큼이나 바쁘고 유명한 사람이다. 큰 키에 모델같이 세련된 외모, 트루시에 감독의 제스처와 표정까지 그대로 전달하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많은 일본인 '팬'을 확보했다. 일본 TV광고에도 출연했고, 코미디 흉내내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다바디는 프랑스 파리 동양어학원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시즈오카대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했다. 파리에서 공부할 때 이미 '상용한자 2천자'를 완벽하게 암기한 그는 '일본인보다 더 정확한 일본어를 구사한다'는 평을 듣는다.

프랑스어·일본어는 물론 영어와 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까지 가능한 그는 파리 동양어학원 시절 한국어도 2년간 공부했다. 한글을 읽고 쓰는 데는 문제가 없고,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할 수 있을 정도다.

佛·日 등 5개국어 능통

세계적인 영화잡지 '프리미어'의 일본어판 편집장으로 일하던 그는 1998년 일본축구협회에 특채돼 트루시에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고교 시절 축구선수로 뛰었던 그는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해 대표팀이 '트루시에 일본'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해 『민들레의 나라 속의 나(タンポポの國の中の私)』라는 책을 펴냈다. 일본 생활에서 느낀 일본인의 폐쇄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국제인으로 올라서기 위해 필요한 애정어린 조언을 담은 이 책은 지금까지 3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기자는 다바디를 일본에서 몇차례 만났고, e-메일로도 많은 생각을 나눴다. 그의 일관된 주장은 "오픈하라"였다.

-일본 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점과 행복했던 순간은.

"일본은 아직도 독특한 섬나라 정서를 갖고 있고,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40대 이후 세대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일본 생활에 만족하며 특별히 불편한 점은 느끼지 못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 대표팀과 함께 한 시간들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내 책을 출판한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트루시에는 완벽주의자

-트루시에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완벽주의자며 매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그의 축구에 대한 비전은 매우 현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현대 축구의 90%는 매니지먼트(팀 관리, 심리학)다. 축구 훈련은 10%에 불과하다. 그는 선수들에게 '당신들은 인간이며 성인이다. 위대한 선수가 되려면 좋은 인간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휴머니즘과 교육은 모든 것의 열쇠다. 나는 트루시에와 거스 히딩크 한국팀 감독이 기본적으로 같은 철학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 조국인 프랑스의 월드컵 2연패 가능성은.

"프랑스의 성공은 사회적인 배경에서 나왔다. 프랑스는 미국과 같은 '멜팅 폿(melting pot·용광로)'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민주·자유·평등·협동의 기치 아래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팀의 드사이는 가나, 조르카에프는 아르메니아, 트레제게는 아르헨티나, 지단은 알제리 출신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프랑스인이다. 이땅을 사랑하고 거기 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월드컵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팀과 선수는.

"두말할 나위 없이 프랑스다. 올해는 뱅상 캉들라(AS 로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레제게와 앙리도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 그래도 가장 뛰어난 선수는 로베르 피레스인데 아쉽게도 부상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다. 스웨덴의 라르손, 파라과이의 산타 크루스, 세네갈의 디우프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올해 월드컵은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 에콰도르와 스페인이 큰 일을 낼 조짐이 보인다."

-일본 축구에서 어떤 희망을 읽나.

"현재 일본 선수들은 유럽 리그에 도전하고 싶어할 정도로 오픈됐다. 그들은 J리그로는 만족할 수 없다. 트루시에 덕분에 시스템은 더욱 공정해졌다. 젊은 선수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베테랑들에게 돌아가는 특혜는 줄어들었다. 다음 단계는 젊은 세대들이 주도권을 넘겨받아 체육계를 직접 운영하는 것이다. 일본도 30,40대 젊은 사람이 축구협회장과 주요한 포지션을 맡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홍명보가 5년 뒤 대한축구협회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대표팀 강해져

-한국 대표팀에 대한 느낌은.

"히딩크가 매우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니 유감이다. 한국인들이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좀더 유연해지고, 바깥 세상에 대해 더 열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그가 한국팀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믿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한국팀을 계속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 세계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국제화를 계속해야 한다. 10명 이상의 선수를 매년 해외로 내보내라. 특히 유럽으로. 코치들을 유럽으로 보내 공부를 시켜라. 오픈하라. 대표팀 감독에 계속 외국인을 기용하라."

-트루시에가 떠난 뒤의 계획은.

"계속 일본에 머물면서 영화와 TV 일을 할 것이다. 나 자신의 프로그램을 갖게 될 것 같다. 그리고 패션 잡지 엘르와 영화잡지 프리미어에 기고를 할 것이다. 언젠가는 한국에 가 한국어를 더 공부해서 일본어만큼 한국어도 유창하게 하고 싶다."

-한국 영화에 대한 느낌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에게 희망을 건다. '초록물고기'와 '거짓말'도 매우 재미있고, 예술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한국 영화는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열정적이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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