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바뀐 특목고 입시 지형도’ 시리즈를 마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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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가 코 앞인데 포트폴리오를 만들려면 지금까지 한 모든 공부 경험을 자기주도학습에 끌어다 붙이는 수 밖에 없잖아요.” “단기간에 독서이력을 만들려면 단편이나 요약본만 찾아 읽는 게 빠르죠.” “실험·연구 실적을 만들려고 학원에서 컨설팅을 받아요.”

 입학사정관전형을 실시한다는 교육과학기술부 발표 이후 취재 현장에서 듣게 된 말들이다. 활동 결과물을 단기간에 준비하려는 편법들이 가득하다. 갑자기 바뀐 교육정책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월말 필기시험을 없애고 학습계획서·추천서·자기소개서·학교생활기록부(전공 관련 특정교과 내신)만으로 뽑겠다는 특목고 입시개편안을 발표했다. 자율학습능력과 독서능력을 평가하는‘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사교육을 줄이자는 취지였지만, 막상 교육현장에선 새로운 사교육 수요가 늘어났다. 입시개편의 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 방법에 대해선 안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온갖 추측과 불안에 휩싸인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입시 나침반을 찾아 사교육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거라는 교과부의 경고는 잊은 지 오래다. 내신교과성적과 지필고사 성적, 각종 공인인증 성적만으로 지원 여부를 가늠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개인별 학습이력을 분석하는 맞춤형 입시컨설팅이 필요해져서다.

 수험생들은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특목고 특별전형을 노려왔던 조기유학 귀국생들은 내신시험에 대한 고민이 늘었다. 반면, 유학시절 미리 학습활동 결과물을 준비했던 귀국생들은 면접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대입 전문계고특별전형을 상위권 대학 진입의 발판으로 삼으려 아예 전문계고로 눈길을 돌리는 학생들도 나타났다.

 학부모들의 주름은 깊어졌다. “입시정보수집 뿐 아니라 학습활동까지 일일이 관리하게 됐다”며 한숨이다. 일부 열성 엄마들은 독서지도방법을 가르친다는 학원으로 몰려들었다. 학교운영위원회, 각종 어머니회 등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늘기도 했다. 추천서를 받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모두 바뀐 입시에서 수상실적·인증시험·자격증 등이 배제되면서 나타난 ‘풍선효과’다.

 사교육 수강에 대한 고민도 늘었다. “입시전략을 짜고 포트폴리오 준비를 하려면 학원을 안 보낼 수 없는데, 입시에선 사교육 흔적을 감춰야 하니 혼란스럽다”는 하소연이 많았다. “잠재력을 보겠다는 입시개편의 명분엔 동감하지만, 입시에 맞는 진로설계·적성계발까지 모두 컨설팅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부담이 커졌어요.”수험생을 둔 한 학부모의 말이다. 한숨 섞인 목소리엔 입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공교육 현장에 대한 원망이 섞여 있었다.

<박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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