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卒 대통령 트루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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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가을부터 신학기가 시작되는 미국은 지금이 대학입시의 막바지다.

원하는 대학의 입학허가서를 아직도 받지 못했거나, 받아놓고도 연간 1만~4만달러에 달하는 학비 때문에 걱정하는 가정도 많다. 수만명의 저소득층 학생들이 지난달 말로 대부분 끝난 등록금 예치 1차 시한을 넘겼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돈 때문에 대학 못가는 경우에 종종 언급되는 대통령이 있다. 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사진)이다.

그는 미국의 학력사회가 완전히 정착된 20세기 이후 대학을 다니지 않고 대통령이 된 유일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미주리주의 가난한 옥수수 농가 출신인 트루먼은 고교를 마친 후 돈이 없어 대학을 포기한 후 공사판 인부·우체부·은행서기 등을 전전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사병으로 참전해 장교로 승진했다. 퇴역 후 소규모 금융·운수사업을 벌이다 지역사회의 신망을 얻어 예비군 대령과 지역판사를 겸한 것이 경력의 대부분이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상원의원이 됐다가 1944년 부통령을 거쳐 다음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이같은 경력 때문에 트루먼은 48년 선거 때 명문가 출신에다 컬럼비아대 법대를 나온 검사 출신의 공화당 후보인 토머스 듀이와 대비되면서 '미주리 범킨'(흔해 빠진 평범한 사람이란 속어)으로 불렸고, 다들 그의 패배를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흑인 등 중하류층의 압도적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탓인지 공부하기 싫어하는 미 고교생들 사이에 '트루먼 익스큐즈'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몇해 전 몬태나주에서는 트루먼을 가장 존경한다는 19세의 고교 졸업생이 주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달 미시시피주에서는 판사의 학력을 다른 주처럼 최소한 대졸이나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로 제한하자는 입법청원을 주의회가 "트루먼은 대학 안나오고도 인류 최대의 판결(원자폭탄 투하)을 내렸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트루먼 기념관의 엘리자베스 사플리 연구원은 "트루먼은 고교시절 라틴어까지 만점을 받은 최우수학생이었다"면서 "대학졸업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트루먼이 공부 안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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