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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도 유아교육 보조금 줘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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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교육 관련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바로 교육인적자원부를 질책한다. 교육의 본질을 지키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부가 교육의 본질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가의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다. 최근 만 5세아 무상교육비 지급과 관련해 일어난 유아교육계와 학원 간의 갈등은 바로 교육의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문제다.

학원은 윤덕홍 전 교육부 장관이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학원에도 무상교육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점, 학원 부모도 교육기관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는 점, 유아 미술학원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 똑같이 교육과 보호를 담당하는 공적기관이라는 점을 들어 무상교육비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국회의원은 정치적 논리에 입각해 줘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교육부는 본질에 어긋나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학원에 무상교육비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아이들 때문이다. 유아들은 안전하고 발달에 적합한 환경에서 뛰어놀 때 잘 자라는데 학원은 그렇지 못하다.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 대해 정부가 기준을 세우고 까다롭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발달에 맞고, 유치원 교육과 보육의 최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유아 대상 미술학원은 원래 단시간의 미술활동을 목적으로 설립.운영돼 왔기 때문에 교육부는 유아의 발달에 적합한 설립 기준이나 환경을 학원에 요구하지 않았다. 바깥 놀이터가 없어도 되고 건물 4층에 있어도 괜찮다.

이런 곳은 유아들이 짧은 시간 미술활동만 한다면 괜찮지만 3시간 이상, 때로는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에는 부적절하다. 손쉽게 뛰어나가 마음껏 뛰어 놀고 들어올 수 있는 바깥 놀이 공간도 없고, 씨를 심어 꽃을 피워 보며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공간도 없으며, 동물을 길러볼 공간도 없다. 무엇보다 학원은 한 건물 안에 각종 상가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아 주변 환경을 아이들의 발달에 적합하게 고치기 쉽지 않다.

둘째, 영.유아기의 경험 특히 인성의 기초가 되는 정서적 경험은 모두 뇌에 입력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유치원 교육과정을 개발해 유아교육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려 하고 이를 감독하는 장학지도를 정기적으로 하는 것, 여성부가 어린이집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평가 인증제를 실시하려는 것도 아이들의 인성을 제대로 길러 국가 인적자원을 기초단계부터 든든히 하기 위함이다.

최근 의사들은 영유아기에 아이의 인성, 기본 생활습관, 감성 지능 등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다면 15년 후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인성교육에 실패해 부모 살인, 불특정인 살해 등을 감행하거나 행동이 이상한 젊은이를 많이 보았다. 유아교육의 본질을 되짚어 보아야 할 중요한 시점임에 틀림없다.

현재 학원은 학교 또는 어린이집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질적 수준을 관리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학원에 무상교육비를 주기 시작한다면 무상교육 대상을 확대하는 목적은 이룰 수 있지만 유아에게 적합한 교육 및 보육의 질적 수준을 보장해 줄 수 없다.

교육부가 조건을 갖출 것을 일차 요구했지만 학원이 이를 거부하고 무상교육비 지급만을 요구했다는데, 학원 측이 정말 아이들을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미술학원 측은 저소득층 유아가 많이 다니기 때문에 무상교육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소득층 유아일수록 환경이 좋고 질적 수준이 높은 곳에서 교육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부모가 아이에게 제대로 해 줄 수 없을 때 정부는 부모 대신 아이에게 최선의 것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공정한 분배다.

교육부는 전직 장관이 국회의원들과 약속했다 해서 무상교육비를 학원에 주어서는 안 된다. 연한 싹과 같아 한번 다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게 될 아이들을 생각해 교육의 본질을 지켜주기 바란다. 2002년 2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열렸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최 유아교육자 회의에서 선진국들은 부모들이 초등학교 이상의 자녀에게는 치맛바람을 일으키지만 유아기에는 충분히 뛰어놀게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또 학부모들이 이를 상식으로 알고 있다고 해 무척 부러웠다.

이원영 중앙대 교수유아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