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원 진두지휘… 부도 3년만에'우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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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8면

화진코스메틱 박형미 부회장은 '어머니의 어머니'로 불린다. 불과 마흔 한 살인데도 그렇다. 왜일까. 화진에는 4만5천여명의 방문판매원들이 있다. 대부분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다. 박부회장은 이들을 매일 교육하고 총지휘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역정은 참으로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방문판매원으로 입사, 11년만에 부회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1989년. 그녀는 사업가를 남편으로 둔 가정주부였다. 남편은 실패를 거듭했다. 수억원대 빚을 안고 길거리로 나앉을 처지였다. 딸아이의 우유 값도 없었다. 뭔가 해야했다. 그녀는 무작정 화진으로 가 그날로 입사하게 된다. 그 때 그녀의 지갑에는 시내버스 토큰 3개가 전부였다. 그날부터 그녀는 무거운 화장품 가방을 들고 집집마다 돌았다. 덕분에 실적이 좋아 승진을 거듭해 지난해 5월 부회장에 올랐다.

그녀에게도 IMF 한파는 닥쳐왔다. 화진의 판매법인 서울 여의도 서부화진화장품(주)을 이끌고 있던 때였다. 부도나자 판매원들은 하나둘씩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박부회장은 1백여명의 판매원은 꼭 붙잡았다. 이들이 남은 회사 판매원의 전부였다. 그녀는 1년여간 급여를 받지 못했으나 이들과 동고동락했다. 아이들의 저금통장까지 스스로 털어야 했다. 화진은 이들 사원이 남아있는 서부화진으로 본사를 옮기고 이를 둥지 삼아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매출 1천4백억원의 중견회사로 회생했다. 불과 3년만이다. 화진은 최근 서울 삼성동 18층짜리 건물을 사 이사했다.

박부회장은 요즘도 하루 서너 시간의 사원 강의를 꼭 한다.

"예전에는 '세상이 날 등졌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지구는 날 기준으로 돌고 있어. 내가 눈을 뜨니 날이 새고 잠을 자니 밤이 되더라'고 말합니다." 02-3450-8803

J섹션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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