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합병 시작은 좋았는데 : 합치지 말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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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초대형 합병(메가 머저)이 줄을 이어왔지만 결과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기대했던 시너지(상승)효과는 온데 간데 없고,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합병 후유증을 앓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들은 미국의 초대형 미디어 그룹인 AOL 타임워너와 독일과 미국 자동차회사 간 결합인 다임러 크라이슬러를 그런 경우로 분류하고 있다.

◇AOL 타임워너=고객들이 전화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AOL과 CNN·타임지·워너브러더스영화사 등을 보유한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가 '결혼'한 경우다.그러나 합병 재미는 영화 '해리포터'를 마케팅하면서 잠깐 누렸을 뿐이라는 게 인수·합병(M&A)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잘못된 짝짓기는 우선 주식시장에서 확인된다.양사의 시가총액은 2000년 1월 합병 발표 당시 3천3백50억달러였지만 합병 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 26일에는 8백32억달러로 오그라들었다.2년여 동안 기업가치가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결국 올 1분기 결산에서 5백42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양사 경영진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와 방송·영화 등 전통적인 매체의 결합이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까지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AOL의 장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가입자수 증가세가 주춤해지고 광고 영업도 부진하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AOL과 타임워너가 다시 갈라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독일을 대표하는 다임러 벤츠가 미국 '빅3'의 막내인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탄생한 회사다.합병 후 회사 내에서 두 나라간 문화적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양사는 1998년 합병을 선언하면서 기술력(다임러)과 마케팅(크라이슬러)이라는 서로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그러나 합병 후 크라이슬러에서 인재들이 대거 이탈함으로써 이런 기대가 무너졌다.

특히 2000년 크라이슬러에 미국인 사장이 물러나고 독일인 사장인 디터 제체가 취임하면서 문화충돌은 더욱 불거졌다.'독일인이 미국 회사를 집어 삼켰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하면서 합병무효를 겨냥한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크라이슬러는 경영난이 심화하면서 지난해 4분기까지 1년6개월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올 1분기에는 1억달러의 소폭 흑자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한때 18%에 달했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최근 13%선으로 떨어졌다.

제체 사장은 "크라이슬러가 90년대 보였던 매출에 대한 11~12%의 이익률이나 경트럭 시장 제패는 과거지사가 돼 버렸다"고 패배를 시인하기도 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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