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겨 넣어,우겨 넣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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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축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원(起源)이 좀 수상(?)하다.

모든 스포츠는 인간의 일상행위 혹은 노동행위에서 그 연원(淵源)을 찾을 수 있다. 권투나 레슬링을 포함하는 격투기는 무엇을 잡아 쓰러뜨리거나 때리는 행위를 게임으로 원용하고 있다. 원시적인 삶의 법칙 아래서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농구나 테니스·야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과 연결된다. 노래로 치자면 노동요(勞動謠)인 것이다.

축구 경기는 인생과 닮은꼴

그러나 축구는 다르다. 기원전부터 단순히 '공을 차는 축제'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축구는 오직 그것, 볼을 찬다는 것 자체로 시작이며 완결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엇인가를 발로 차는 행위가 필요한 때는 언제였을까. 장마철에 젖은 흙발로 마루 위에 올라와 어슬렁거리는 수탉. 아니면 시어머니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고 부엌으로 들어섰을 때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누렁수캐의 '오뉴월 개팔자'를 본 며느리 정도는 아니었을까.

축구만큼 예상이 어려운 게임도 없다. 경기내용은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어이없이 당한 한 골 때문에 질 수도 있는 게임이 축구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일본이 브라질을 그렇게 이겼다. 그래서 축구만큼 인생과 닮아 있는 스포츠가 없다고 한다. 우리를 그토록 열광케 하고, 또 그만큼 참담하게 하는 요인이 가득하다는 점. 이것도 인류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한국축구 대표팀이 A매치에서만 4연승을 올리며 달아오르고 있다. 여기에다 실점을 하지 않는 수비의 안정세를 보이면서 희망의 불을 댕기고 있다. 성급하게 16강 진출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기대에 부푼 축구 팬도 많다.

나는 한국축구가 현대화되기엔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내심 믿고 있던 사람의 하나다. 시설이나 선수관리 시스템이 열악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우리의 의식, 그 가운데서도 언어습관에서 찾았다.

청소년시절 나는 "슛을 하라"는 말을 "우겨 넣어"라고 하는 축구 풍토에서 자랐다. 골문 앞에서 무슨 수를 쓰든 볼을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으라는 이 말은 축구경기를 관전할 때도 제일 많이 썼던 응원의 하나였다. "우겨 넣어, 우겨 넣어!" 그때 세트플레이니, 센터링이니 하는 기초적이고도 합리적인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우겨 넣는 것이 축구였고 슛이었다.

이런 것이 어디 축구에서만 찾아지는 것이랴. 어쩌다 TV 사극을 보게 되면 죄인(혐의자)을 문초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한결같이 내뱉는 호령이 있다.

"저놈을 매우 쳐라." 어떤 것으로, 얼마나 때리라는 것인지. 어느 정도의 강도와 얼마만큼의 횟수도 없다. 마구잡이로 후려 때리라는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에 난장(杖)이라는 형벌이 있긴 했다. 신체부위를 어디든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때리는, 그야말로 난타(亂打)였다. 그러나 고문도 영조 때에 이르러 불로 지지는 낙형(刑)과 함께 폐지된다.

우격다짐보다 방법 찾아야

어디 TV사극에서 만이랴. 뉴스에 등장하는 정부 관료들도 툭하면 내뱉는 말이 있다. "이번 기회에 뿌리뽑도록 하겠습니다." 요즘에는 월드컵을 맞아 기초질서 위반사범을 뿌리뽑겠다고 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느 정도 어떻게 바로잡아 나가겠다는 구체성이나 합리적인 방법론이 없다. '볼을 우겨 넣고' '사람을 매우 쳐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축구가 현대화를 이룩할 것만은 확실하다. 애물단지가 될까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잔디구장을 저토록 완벽하게 만들어내지 않았는가.여기에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인구의 저변은 놀랄 만큼 확산될 것이다.

한국축구의 현대화는 기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언어습관만은 여전히 '우겨 넣는' 전근대성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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