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전쟁의 봉화, 흑2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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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제2보 (18~28)]
黑. 이세돌 9단 白.구리 7단

힘있는 자는 강경하다. 상대가 물렁하게 나오면 법도나 정수 따위는 필요없이 바로 손을 본다. 만만치 않구나 생각되면 조심한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기본 노선은 같다.

이세돌 9단의 강경 노선이 우상에서 풍운을 부르고 있다. 힘이라면 자신있는 구리 7단도 수세 속에서 은근히 입맛을 다시고 있다.

18. 이 형태의 맥점. '참고도1' 흑1은 무모하며 백2로 끊겨 응수가 없다. 이세돌은 19로 웅크린 채 곧바로 치고 나갈 자세를 취한다.

백이'참고도2'백1로 틀을 잡으려 하면 흑2부터 6까지 와락 끊어버릴 참이다.

구리 7단도 상대의 의도를 감지했다. 그는 20에 하나 붙여 원병을 만든 뒤 22로 뻗었다. 구리는 묻고 있다. "이번에도 끊을 수 있는가."

박영훈 9단은 '참고도3'처럼 흑1로 넘어가 두면 실리도 충분해 흑 쪽의 만족스러운 결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세돌은 거의 노타임으로 23을 찌르더니 25로 뚝 끊었다. 초강수다. 생사를 가르는 대접전의 봉화가 오른 것이다.

검토실의 프로들은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젓고 있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이렇게까지 강경할 필요가 있는지 묻고 있다. 하지만 이게 도저히 말릴 수 없는 이세돌의 바둑이다. 그는 싸우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사람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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